14.명시 감상

秋泉(추천)/설도(당)-명시 감상 770

한상철 2020. 10. 8. 11:15

秋泉(추천)

-가을 샘

 

            설도(薛濤)/당

冷色初澄一帶煙(냉색초징일대연) 서늘한 맑은 샘에 한 줄기 김이 피어오르고

幽聲遙瀉十絲弦(유성요사십사현) 열 줄의 그윽한 소리가 아득히 울려 퍼집니다

長來枕上牽情思(장래침상견정사) 베갯머리에 길게 드리운 한없는 그리움에

不使愁人半夜眠(부사수인반야면) 임 그리워 긴긴 밤 잠 못 이뤄 뒤척이지오

 

 

幽聲(유성) : 그윽한 소리

不使(불사) : ~로 하여금 못하게 하다.

 

* 설도(薛濤, 770? ~ 830?); 자는 홍도(洪度)이며 원적은 장안(長安)이다. 당대의 문학사에서 여류시인을 언급할 때 설도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는 논의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8세에 이미 시를 짓고 읊을 줄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관리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가 죽은 후 의지할 곳이 없었던, 설도는 16세에 기적(妓籍)에 들어갔다. 시적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는 명성이 날로 높아졌으며, 사방으로 이름을 떨쳤고, 그녀를 찾아오는 문인들도 많았다. 설도가 알고 지낸 문인은, 원진(元稹),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이고, 관료나 장수들로는 위고(韋皐), 고숭문(高崇文) 등 20명이 넘는다. 뿐더러 당대에 유명한 문인, 관료, 처사 등 뭇 남성이 설도의 연인들이었다. 이들과의 교류는《전당시(全唐詩)》안에 수록된 여러 시인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당시에 서천 절도사(西川節度使)였던 위고(韋皐)는 그녀를 ‘여교서(女校書)’라 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무원형(武元衡)도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사서 교서랑(校書郞)이란 벼슬을 내려달라고 상부에 건의했으나,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대의 사람들이 기생을 교서라 부르게 된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수 많은 남성들과의 교류 중, 특히 원진과의 정은 각별했다고 하는데, 설도는 그와 실연의 마음을 노래한 훌륭한 시문을 지어내었다. 기적에서 나와 두보의 초당으로 유명한 성도의 완화계에 은거했을 시절에는, 붉은 색종이를 직접 만들어 그 종이에 직접 시를 써 문인들에게 헌상하기도 했는데, 이것을 ‘설도전’이라 이르며,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만년에는 도교에 귀의하여 도사가 되어 여생을 마친다.

* 다음카페 한시 속으로에서 인용 수정(2020.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