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孀婦詞(상부사)/유몽인(조선)-명시 감상 1,043

한상철 2021. 3. 2. 06:24

상부사(孀婦詞)

- 늙은 과부에 대한 이야기

 

      유몽인(柳夢寅, 1559~1623)/조선

七十老孀婦(칠십로상부) 일흔의 늙은 과부가
單居守空袞(단거수공곤) 단정히 빈 방을 지키고 있네
傍人權之嫁(방인권지가) 옆집 사람이 시집가라 권하는데
善男顔如槿(선남안여근) 남자 얼굴이 무궁화꽃처럼 잘 생겼다네
慣讀女史詩(관독여사시) 여사*에 관련한 시를 자주 읽고 익힌지라
頗知妊姒訓(파지임사훈) 임사*의 교훈을 조금은 알고 있네
白首作春容(백수작춘용) 늙은 흰 머리에 젊은 자태를 꾸민들
寧不愧脂粉(녕부괴지분) 어찌 연지와 분에 부끄럽지 않으리 (번역 한상철)

 

* 여사; 중국 주(周)나라 때 왕후의 예절에 관한 일을 맡은 여자 관리. 학식이 높은 여자를 임명하였다.

* 임사; 문왕(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妊)과, 문왕의 비(妃)인 태사(太姒). 모두 현모양처의 귀감이다. 妊은 任과 통용된다.

* 감상; 나이 많은 과부가 조용히 규방을 지키고 사는데 이웃 사람이 개가하라고 권하면서 무궁화꽃 같이 고운 얼굴의 좋은 남자가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자신은 여자의 바른 행실을 가르친 여사(女史)의 시도 배웠고, 태임이나 태사와 같은 현모양처의 가르침도 약간은 알고 있으나, 절개를 바꿀 수 없다. 만약 개가하려고, 다 늙은 얼굴에 새로 연지 찍고 분 바르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전체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유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 밑에서 벼슬하던 많은 사람들이 새 조정에 빌붙어서 몸을 보전하였다. 그러나 유몽인은 이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보이고, 사형을 당하였다. 광해군이 비록 폭군이었을 망정, 자신이 모셨던 임금이니 절개를 바꿀 수 없다는 다짐이다. 역사에서는 광해군 때 조정의 절개있는 신하로, 유일하게 유몽인을 들고 있다. 요즘 정치판에서는 이른바 ‘정치 철새’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환절기(換節期)'는 정치인들이 '절개를 바꾸는 계절'이라는 자조(自嘲)의 말도 들린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철새라는 비아냥도 그들에게는 과분하다는 것이다. 철새들은 일정한 장소를 오고가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분명 철새들에 대한 모독이다. 상황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우화속의 '박쥐'가 더 적당한 호칭일 것이다. 그들이 유몽인의 이 시를 본다면,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낄까?(김영봉;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다음카페 행복한 선물에서 인용 수정함.(2020.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