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무제)/미비(명)-명시 감상 1,405
無題(무제)
미비(美婢/明)
無端割愛出深閨(무단할애출심규) 실없이 사랑하는 사람 내어줘 깊은 규방을 나서지만
猶勝前人換馬時(유승전인환마시) 그래도 예전에 사람을 말과 바꾸던 것보다는 나으리
他日相逢莫惆悵(타일상봉막추창) 나중에 서로 만나게 되더라도 언짢아 말아야지
春風吹盡道旁枝(춘풍취진도방지) 봄바람 불면 길섶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 割愛: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나누어 줌. 아끼지 않고 선뜻 내어줌.
- 명(明)나라 때 주대소(朱大韶)는 화정(華亭, 현재 上海) 사람으로 자(字)는 상현(象玄) 또는 상원(象元), 호(號)는 문석(文石)이다. 가정(嘉靖) 26(1547)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한림원(翰林院) 서길사(庶吉士)를 지냈다. 치사(致仕)한 뒤 낙향하여 뒤 문원(文園)이라는 별서(別墅)를 마련하고 횡경각(橫經閣)ㆍ쾌각(快閣)ㆍ웅상각(熊祥閣) 등의 누각을 지었다. 이곳에 옛 주기(酒器)와 큰 솥(彛鼎)을 진설(陳設)하고 이름난 그림과 서법, 진본(珍本) 도서를 모아 두었다. 이따금 벗들을 文園에 초대해 함께 술을 마시고, 서화를 감상하며, 시문을 담론하는 등 풍류를 즐겼다. 장서가(藏書家)였던 그는 특히 宋나라 때 출판된 고서(古書)를 무척이나 아꼈다. 송판본(宋版本)은 예나 지금이나 옛 서책을 모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고서이다. 송판본이 남달리 관심과 애착을 낳는 이유는 오래되어 가치가 높기도 하거니와, 그 내용이 정확하고 판각(板刻)이 정교하며, 책의 외양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朱大韶의 藏書 가운데에도 ≪통감(通鑒)≫ ≪보제방(普濟方)≫ ≪육선공집(陸宣公集)≫ 등의 宋판본 도서 진본(珍本)이 있었다. 어느 날 오문(吳門, 蘇州 서북쪽 城門)의 서점에서, 동진(東晉) 때 원굉(袁宏)이 찬술한 ≪후한기(後漢紀)≫(三十卷)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몹시 좋아하던(酷愛) 宋나라 때의 누판(鏤版)으로 외부를 비단과 옥으로 꿰매 장식한 화려하고 고급스런 책이었다. 일별(一瞥)에 반해버린 朱大韶는 그 책을 넘겨받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애지중지하던 예쁜 첩(美婢)을 내어주고, 겨우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에 美婢가 朱大韶의 집을 떠나기 전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서글픈 심사를 녹여 벽에 쓰니, 바로 위의 시(詩)라 한다.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강호음양학에서인용 수정/(2021. 8. 25)
* 동진 ( 東晉 ) 원굉 ( 袁宏 ) 의 ≪ 후한기 ( 後漢紀 ) ≫ ( 三十卷 ) 선장 ( 線裝 ) ( 竹紙 , 29×18cm, 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