懷古(회고)/진밀(남송)-명시 감상 1,638
懷古(회고)-(二首其二)
진밀(陳密/南宋)
羲之誓墓終不仕(희지서묘종불사) 왕희지는 사직한 뒤로 끝내 벼슬하지 않았고
幼輿挑女因折齒(유여도녀인절치) 사곤은 여인을 꾀다가 이빨을 부러뜨렸지
淸高足以激懦貧(청고족이격나빈) 맑고 고상함은 충분히 여리고 모자랄 수 있고
曠達端能傷廉耻(광달단능상렴치) 광달함은 공교롭게도 염치를 잃을 수 있네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해수 경해에서 인용 수정.(2022. 1. 7)
- 羲之: 동진(東晉) 때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王羲之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벼슬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주변의 권유로 회계내사(會稽內史)를 지내고 우군장군(右軍將軍)을 겸한 것이 전부였다. 그의 유명한 <난정서(蘭亭序)>는 會稽內史 시절에 남긴 작품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王羲之라는 이름보다는 왕우군(王右軍)으로 부른 것도 그가 右軍將軍의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會稽內史라는 자리도 벼슬을 탐해서가 아니라, 會稽지방의 빼어난 풍광을 좋아해 부임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로는 출사(出仕)하지 않았으며, 평생 글씨를 쓰고 풍류를 즐기며 소탈한 삶을 살았다.
- 誓墓: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함.
- 幼輿: 동진(東晉) 때의 인물인 사곤(謝鯤), 幼輿는 그의 자(字). 노래와 거문고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웃집 고(高)씨네 여인을 넘보며 집적대다가 그녀가 내던진 북(梭)에 맞아 이빨이 두 대나 부러졌다(投梭折齒). 사람들이 "함부로 껄떡대다가 험한 꼴을 당했다"며 조소했다. 하지만, 그는 거만스레 휘파람을 불며(幼輿嘯) "그래도, 나의 소가(嘯歌)는 변함없다"고 뽐냈다고 한다. ≪진서(晉書)≫ <사곤전(謝鯤傳)>에 관련 고사가 전해온다. 이로부터 `投梭`(투사)는 불순한 마음을 품은 남자를 거절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대(謝鯤)와 유량(庾亮)을 비교하던데 스스로 어떻다고 생각하느냐고 누군가 사곤에게 물었다. 이에 謝鯤은 "조정에서 예복을 입고 백관을 부리는 일은 庚亮보다 내가 못하지만, 산림에서 내키는 대로 사는 일은 내가 더 낫다(一丘一壑自謂過之)"고 말했다. 丘壑이란 `언덕과 구렁`이라는 뜻으로 산수(山水)나 풍류(風流)를 말한다. 謝鯤의 이 말을 듣고 화가인 고개지(顧愷之)가 그의 초상화를 그린 뒤 "이 사람은 산림(丘壑之中)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유량(庚亮)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庚亮은 풍모가 매우 빼어나 도공(陶侃)은 그를 보자마자 곧바로 생각을 바꾸고 종일 환담하면서 극진히 아끼고 존중하게 되었다"(庾風姿神貌 陶一見便改觀 談宴竟日 愛重頓至). 여기에 나오는 도간(陶侃)은 東晉 때의 명장(名將)으로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다.
- 足以: 충분히 ∼ 할 수 있다. ∼하기에 족하다.
- 淸高: 사람됨이 맑고 고상함.
- 懦貧: 여리고 가난함(모자람).
- 曠達: 도량이 넓어서 매사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자적함.
- 端: 때마침, 공교롭게도. 오로지. 도대체. 대관절.
* 현대 중국화가 서낙락 ( 徐樂樂 ) 의 < 사곤절치도 ( 謝鯤折齒圖 )> 경심 ( 鏡心 ) ( 設色紙本 , 37.5×49.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