煮茶(자차)/안수(북송)-명시 감상 1,661
煮茶(자차)
-차를 끓임
晏殊(안수/北宋)
稽山新茗綠如烟(계산신명록여연) 회계산의 새 차는 초록빛이 안개 같은데
靜挈都藍煮惠泉(정설도람자혜천) 조용히 도람에 담아 혜천의 샘물로 끓이네
未向人間殺風景(미향인간살풍경) 인간 세상 향한 스산한 풍경이랄 수 없으니
更持醪醑醉花前(갱지료서취화전) 다시금 술잔 잡고 꽃 앞에서 취하네
- 稽山: 회계산(會稽山). 절강(浙江)성 소흥(紹興) 남동쪽에 있는 명산.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夫差)에게 포위(包圍)당해 패배한 뒤 쓸개를 핥으며(嘗膽) 복수의 의지를 다진 곳으로 유명하다.
- 都藍: 도람(都籃). 차를 마시고 정리할 때 쓰는 모든(都) 다기(茶器)와 다구(茶具)를 담는 그릇. 대개 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 惠泉: 한때 천하제이천(天下第二泉)으로 불렸던 강소(江蘇)성 소주(蘇州)시 무석(無錫)의 혜산(惠山)에 있는 샘.
- 殺風景: 메마르고 삭막한 풍경. 잔인하고 살벌한 광경. 아주 보잘것없고 스산한 풍경. 흥취(興趣)나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는 행위, 아름다운 풍광을 망가뜨리는 행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꼴불견(不相如) 등도 殺風景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당(唐)나라 때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잡찬(雜簒)≫(卷上)에 殺風景의 구체적 사례들이 열거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자료마다 나열된 숫자나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단 모아본다.
△송간갈도(松間喝道, 松下喝道): 소나무 숲속에서 쉬는데 갑자기 "훠이, 물렀거라!" 하며 등장하는 벼슬아치의 행차.
△간화루하(看花淚下): 꽃 보며 눈물을 흘림. 감정이 역류하는 분?
△태상포석(苔上鋪席): 이끼 위에 돗자리 폄. 그냥 앉아도 좋은 것을.
△작각수양(斫却垂楊): 눈에 거슬린다고 흐드러진 버드나무를 마구 찍어냄. 까칠함도 정도껏 해야지.
△화상쇄곤(花上晒褌): 꽃 위에 속옷 널어 말림.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유춘중재(游春重載): 봄나들이 나가는데 먹을 것 바라바리 챙김. 놀러가는 건지 먹으러 가는 건지.
△석순계마(石筍繫馬): 석순(종유석)에 말고삐 묶어두는 짓. 되는대로 사는 거지 뭐.
△월하파화(月下把火): 달빛 아래에서 횃불 듦. 그야말로 옥상옥(屋上屋).
△기연설속사(妓筵說俗事): 술자리에서 기생 끼고 놀면서 속세의 일 들먹임. 엉뚱한 건지, 못난 건지.
△과원종채(果園種菜): 과수원에 채소 심기. 무분별의 본좌.
△배산기루(背山起樓): 산을 등지고 누대 짓기. 뭘 보려고?
△화가하양계압(花架下養鷄鴨): 꽃 시렁 아래에서 닭과 오리를 침. 꽃이 귀를 막을 일.
△청천탁족(淸泉濯足): 맑은 샘물에 발 씻기. 눈총받기 연습하니, 몰매 맞고 싶어 환장한 거겠지.
△소금자학(燒琴煮鶴, 焚琴煮鶴): 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기. 집안 망쳐먹으려 작정했나 보지.
△대화철차(對花啜茶): 꽃 감상하며 차 마시기. 완상(玩賞)이야 음미(吟味)야?
李商隱이 ≪雜纂≫을 내놓자 북송(北宋) 문인 왕질(王銍)이 ≪속잡찬(續雜纂)≫을 지었고, 소식(蘇軾)이 ≪재속잡찬(再續雜纂≫으로 뒤를 이었다. 명대(明代)의 황윤교(黃允交)는 ≪잡찬삼속(雜纂三續)≫, 일명 ≪三續雜纂)≫ <조흥(阻興)>에서 殺風景 목록에 몇 가지를 보탰다.
△고취유산(鼓吹遊山): 북 치고 나팔 불며 산놀이 함. 고성방가(高聲放歌)를 산에서까지, 쯧쯧...
△청가설가무(聽歌說家務): 노래 들으며 집안일 얘기함. 음악회에서 자기 집안 얘기라니.
△송림작측(松林作厠): 솔밭에 뒷간 짓기. 다른 곳도 얼마든지 많은데.
△명산벽상제시(名山壁上題詩): 명산 바위벽에 시를 지어 새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자기 과시의 표본 산천각자(山川刻字).
△대명희매좌(對名姬罵坐): 명기(名技) 앞에 두고 자리싸움 일삼는 짓.
△창부틈석(傖父闖席): 시골뜨기 연회석에 끼어들기.
△방폭죽불향(放爆竹不響): 폭죽 터뜨렸는데 소리 안 남.
△상화시대우(賞花時大雨): 꽃 감상할 때 큰 비 내림.
이렇게 殺風景의 사례를 들다 보면 끝이 있으려나 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청말근대 작가 증박(曾朴)은 ≪얼해화(孼海花)≫(제7회)에서 "잔치에 기생 부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살풍경"(不叫局也太殺風景)이라고 했다.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노신(魯迅)은 "용화(龍華)의 복사꽃이 애써 피었는데 경비사령부가 이곳을 차지해 버렸다"며 이를 `大殺風景`이라고 했다. 그의 ≪서신집ㆍ치산본초지(書信集·致山本初枝)≫에 나온다. 이 밖에도 보고듣기 민망한 꼴불견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늙은 기생이 애 배는 일 △말라깽이 씨름판에 나서는 일 △의원(醫員)이 앓는 일 △가난한 서생이 기생 부르는 일 △장수(將帥)가 낙마(落馬)하는 일 △마부가 문자 쓰는 일 △고자(鼓子)가 미첩(美妾) 얻는 일 △낙방 후에 까치 우는 일 △푸줏간에서 들리는 독경소리 등등.
* 다음블로그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기무일준주에서 인용 수정.(2022. 2. 4)
* 작가미상의 옛 중국화 <자다도( 煮茶圖) > 단선 ( 團扇 ) ( 設色絹本 , 26×2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