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煮茶(자차)/안수(북송)-명시 감상 1,661

한상철 2022. 2. 4. 11:22

煮茶(자차)

-차를 끓임

 

  晏殊(안수/北宋)

稽山新茗綠如烟(계산신명록여연) 회계산의 새 차는 초록빛이 안개 같은데

靜挈都藍煮惠泉(정설도람자혜천) 조용히 도람에 담아 혜천의 샘물로 끓이네

未向人間殺風景(미향인간살풍경) 인간 세상 향한 스산한 풍경이랄 수 없으니

更持醪醑醉花前(갱지료서취화전) 다시금 술잔 잡고 꽃 앞에서 취하네

 

- 稽山: 회계산(會稽山). 절강(浙江)성 소흥(紹興) 남동쪽에 있는 명산.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夫差)에게 포위(包圍)당해 패배한 뒤 쓸개를 핥으며(嘗膽) 복수의 의지를 다진 곳으로 유명하다. 

- 都藍: 도람(都籃). 차를 마시고 정리할 때 쓰는 모든() 다기(茶器)와 다구(茶具)를 담는 그릇. 대개 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 惠泉: 한때 천하제이천(天下第二泉)으로 불렸던 강소(江蘇)성 소주(蘇州)시 무석(無錫)의 혜산(惠山)에 있는 샘.

- 殺風景: 메마르고 삭막한 풍경. 잔인하고 살벌한 광경. 아주 보잘것없고 스산한 풍경. 흥취(興趣)나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는 행위, 아름다운 풍광을 망가뜨리는 행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꼴불견(不相如) 등도 殺風景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라 때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잡찬(雜簒)(卷上) 殺風景의 구체적 사례들이 열거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자료마다 나열된 숫자나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단 모아본다. 

송간갈도(松間喝道, 松下喝道): 소나무 숲속에서 쉬는데 갑자기 "훠이, 물렀거라!" 하며 등장하는 벼슬아치의 행차. 

간화루하(看花淚下): 꽃 보며 눈물을 흘림. 감정이 역류하는 분? 

태상포석(苔上鋪席): 이끼 위에 돗자리 폄. 그냥 앉아도 좋은 것을. 

작각수양(斫却垂楊): 눈에 거슬린다고 흐드러진 버드나무를 마구 찍어냄. 까칠함도 정도껏 해야지. 

화상쇄곤(花上晒褌): 꽃 위에 속옷 널어 말림.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유춘중재(游春重載): 봄나들이 나가는데 먹을 것 바라바리 챙김. 놀러가는 건지 먹으러 가는 건지. 

석순계마(石筍繫馬): 석순(종유석)에 말고삐 묶어두는 짓. 되는대로 사는 거지 뭐. 

월하파화(月下把火): 달빛 아래에서 횃불 듦. 그야말로 옥상옥(屋上屋). 

기연설속사(妓筵說俗事): 술자리에서 기생 끼고 놀면서 속세의 일 들먹임. 엉뚱한 건지, 못난 건지. 

과원종채(果園種菜): 과수원에 채소 심기. 무분별의 본좌. 

배산기루(背山起樓): 산을 등지고 누대 짓기. 뭘 보려고? 

화가하양계압(花架下養鷄鴨): 꽃 시렁 아래에서 닭과 오리를 침. 꽃이 귀를 막을 일. 

청천탁족(淸泉濯足): 맑은 샘물에 발 씻기. 눈총받기 연습하니, 몰매 맞고 싶어 환장한 거겠지. 

소금자학(燒琴煮鶴, 焚琴煮鶴): 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기. 집안 망쳐먹으려 작정했나 보지. 

대화철차(對花啜茶): 꽃 감상하며 차 마시기. 완상(玩賞)이야 음미(吟味)? 

李商隱 雜纂을 내놓자 북송(北宋) 문인 왕질(王銍) 속잡찬(續雜纂)을 지었고, 소식(蘇軾) 재속잡찬(再續雜纂으로 뒤를 이었다. 명대(明代)의 황윤교(黃允交) 잡찬삼속(雜纂三續), 일명 三續雜纂) <조흥(阻興)>에서 殺風景 목록에 몇 가지를 보탰다. 

고취유산(鼓吹遊山): 북 치고 나팔 불며 산놀이 함. 고성방가(高聲放歌)를 산에서까지, 쯧쯧... 

청가설가무(聽歌說家務): 노래 들으며 집안일 얘기함. 음악회에서 자기 집안 얘기라니. 

송림작측(松林作厠): 솔밭에 뒷간 짓기. 다른 곳도 얼마든지 많은데. 

명산벽상제시(名山壁上題詩): 명산 바위벽에 시를 지어 새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자기 과시의 표본 산천각자(山川刻字). 

대명희매좌(對名姬罵坐): 명기(名技) 앞에 두고 자리싸움 일삼는 짓. 

창부틈석(傖父闖席): 시골뜨기 연회석에 끼어들기. 

방폭죽불향(放爆竹不響): 폭죽 터뜨렸는데 소리 안 남. 

상화시대우(賞花時大雨): 꽃 감상할 때 큰 비 내림. 

이렇게 殺風景의 사례를 들다 보면 끝이 있으려나 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청말근대 작가 증박(曾朴) 얼해화(孼海花)(7)에서 "잔치에 기생 부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살풍경"(不叫局也太殺風景)이라고 했다.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노신(魯迅)은 "용화(龍華)의 복사꽃이 애써 피었는데 경비사령부가 이곳을 차지해 버렸다"며 이를 `大殺風景`이라고 했다. 그의 서신집치산본초지(書信集·致山本初枝)에 나온다. 이 밖에도 보고듣기 민망한 꼴불견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늙은 기생이 애 배는 일 말라깽이 씨름판에 나서는 일 의원(醫員)이 앓는 일 가난한 서생이 기생 부르는 일 장수(將帥)가 낙마(落馬)하는 일 마부가 문자 쓰는 일 고자(鼓子)가 미첩(美妾) 얻는 일 낙방 후에 까치 우는 일 푸줏간에서 들리는 독경소리 등등.

* 다음블로그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기무일준주에서 인용 수정.(2022. 2. 4)

 

* 작가미상의 옛 중국화  <자다도( 煮茶圖) >  단선 ( 團扇 ) ( 設色絹本 , 26×26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