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不如無生(종부여무생)/어유봉(조선)-명시 감상 1,741
終不如無生(종부여무생)
-결국 죽느니만 못함
어유봉/조선
潑潑川魚戱(발발천어희) 팔딱거리며 냇물은 물고기들 뛰어놀고
得得山鳥鳴(득득산조명) 지천으로 산새들 울고 있는데
而我獨何事(이아독하사) 나만 홀로 무슨 일 때문에
默默抱苦情(묵묵포고정) 묵묵히 괴로운 마음 품고 있는가
穹壤莽無垠(궁양망무은) 끝없이 아득한 천지처럼
積恨何時平(적한하시평) 쌓인 이 한은 어느 때 평온해질까
三復晦翁語(삼복회옹어) 회옹(晦翁, 주희)이 한 말을 세 번 되뇌어보니
終不如無生(종부여무생) 종국에는 죽느니만 못하다네 (번역 한상철)
* 어유봉(魚有鳳, 1672~1744), 『기원집(杞園集)』 4권, 「한식이 지난 후 풍덕의 묘소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가 시절을 느끼고 슬픔이 일어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말 위에서 두보(杜甫)의 시구 ‘面上三年土 春風草又生’으로 운을 나누어 읊조리다[寒食後, 自豊德墓下還京, 感時興哀, 懷不自已, 馬上, 以杜詩面上三年土春風草又生, 分韵口占]」
* 원제가 너무 길어 편의상 제8구를 시제로 삼았다.(역자 주)
* 해설; 어유봉의 본관은 함종(咸從)이고, 호는 기원(杞園)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8세에 문과 초시에 붙었지만 복시(覆試)에서 자신의 시험 답안지가 바뀌는 부정을 당하자 과거에 미련을 버리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천거로 벼슬길에 나아가 승지와 시강원찬선 등을 지냈다. 18세기 호락논쟁에서 낙론계를 대표하는 명망 높은 학자로 평가된다. 위 시는 어유봉이 4월 한식을 맞아 선영이 있는 풍덕(豊德)으로 성묘를 갔다가 돌아오며 지은 작품이다. 물고기가 뛰놀고 새가 노래하는 화락한 봄날이건만, 그는 왜 이토록 괴로워하는가. 풍덕의 선영에 함께 잠들어 있는 아들 어도응(魚道凝, 1694~1709) 때문이다. 어도응은 1709년 4월 24일, 1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5세에 관례를 치르고 이듬해 장가도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 다음카페 통도사 반야암 오솔길 (지안스님) 영축산 님 '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에서 인용 수정.(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