挽甥聯(만생련)/팽옥린(청)-명시 감상 1,774
挽甥聯(만생련)
-생질의 죽음을 애도하는 연구(聯句)
彭玉麟(팽옥린/淸)
定論盖棺(정론개관) 사람의 일생은 죽은 뒤 평가가 가능한데
總系才名辜馬謖(총계재명고마속) 재능과 명망 모두 마속을 저버렸네
滅親執法(멸친집법) 혈육을 돌보지 않고 법을 집행하여
自揮老淚哭羊曇(자휘로루곡양담) 스스로 늙은이의 눈물 뿌리며 양담을 곡하였네
☞ 彭玉麟(팽옥린/淸), <挽甥聯(만생련)>
- 定論盖棺: 개관논정(蓋棺論定)ㆍ개관사정(蓋棺事定).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공과(功過)와 시비(是非)ㆍ선악(善惡)은 그가 죽고 나서야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뜻.
- 才名: 뛰어난 재능(才華)과 명망(名望).
- 馬謖: 촉한(蜀漢)의 장수이자 백미(白眉) 고사(故事)의 주인공 마량(馬良) 오형제의 막내.
☞ https://blog.daum.net/songchen/15716692 참조. 제갈량(諸葛亮)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중용하였다. 특히 蜀漢이 북벌(北伐)을 추진하여 위(魏)를 공격할 때 기산(祈山)에 군대를 주둔하면서 선봉에 나섰다. 하지만 諸葛亮의 당부를 외면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취했다가 가정(街亭) 전투에서 위(魏)의 장합(張郃)에게 대패하여 중원 공략의 포부를 허사로 돌리고 말았다. 이에 제갈량(諸葛亮)이 `눈물을 뿌리며 마속을 베다`라는 휘루참마속(揮淚斬馬謖), 일명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유명한 고사를 남겼다.
- 滅親: 대의멸친(大義滅親). 큰 의리를 지키기 위해 부모와 형제도 돌보지 않음. 춘추시대 위(衛)나라 장공(莊公)이 후궁에게서 아들 주우(州吁)를 낳았다. 莊公이 州吁를 끔찍이 아낀 탓에 州吁가 안일하고 방종했다. 대부 석작(石碏)이 莊公에게 자제들을 단속할 것을 간했으나 莊公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莊公이 죽은 뒤 환공(桓公)이 뒤를 이었다. 州吁가 야욕을 보이며 수시로 桓公을 음해했다. 州吁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눈치 챈 石碏은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州吁와 관계를 끊으라고 훈계했지만 듣지 않았다. 石碏이 은퇴한 뒤 마침내 州吁는 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君侯)에 올랐으며 石厚를 상대부에 봉했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에 石厚가 아비인 石碏에게 해결책을 묻자 石碏은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 왕실을 예방(禮訪)하여 천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환공(桓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환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州吁와 石厚가 陳나라로 떠나자, 石碏은 서둘러 陳나라 桓公에게 밀서(密書)를 보냈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州吁와 石厚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州吁와 石厚가 陳나라에 도착하자 桓公은 바로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뒤, 衛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 삼ㆍ사년조(隱公 三ㆍ四年條)>에 나온다.
- 揮淚: 눈물을 뿌림.
- 羊曇: 동진(東晉) 때의 문인이자 승상 사안(謝安)의 생질(甥姪). 謝安이 평소 그를 애지중지(愛之重之) 했는데, 謝安이 죽자 음악을 멀리하고 서주(西州, 도성인 建業의 城門 이름)로 가는 길은 다니지 않았다. 언젠가 만취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西州에 이르자 슬퍼하며 통곡하고 떠났다고 한다. ≪진서(晉書)≫ 卷79 <양담전(羊曇傳)>에 전한다.
*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해수 경해에서 인용 수정.(2022. 5. 6)
* 근현대 중국화가 김협중(金協中)의 <삼국인물고사(三國人物故事)> (1940年作, 設色絹本, 123.5×5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