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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탄 포대화상(布袋和尙)~일본 고화

한상철 2011. 10. 28. 18:10

 

포대화상께서 곡차(穀茶)한 잔 드셨나? 나귀도 따라 취했다.

어린이와 가장 친한 동무로 익살이 넘치는 '미륵불의 화신'께서,

몸소 소생(小生)을 찾아와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 술 한 잔 더 하자" 하신다!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포대는 꼭 아기를 딞았다.

 

이 세상 모든 남정네들이여!

포대화상처럼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걸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면 안될까?

 

 

일본 에도(江戶)시대(1,603.3.24~1,868.5.3, 265년간)의 거장(巨匠) 단유(探幽 1,602~1,674) 작이다.

간결하게 먹의 농담(濃淡) 하나 만으로, 단필(單筆)에 능란하게 처리했다.

유려(柔麗)한 필치(筆致)가 돋보인다.

왼 옷 어깨(사진 오른 쪽) 쪽 흰 흔적은 그린 먹이 달아난 게 아니고,

늘 헤진 옷을 입고 다니는 포대의 이미지를 잘 나타낸 일종의 운필기법이다.

골기(骨氣)를 중시하는 남화(南畵)에서 쓰는 먹놀림이다.

종이에 수묵 77cmX 26cm. 약 350년 전 작품으로 추정.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된 편이다.

단유의 본명은 가노모리노부(狩野守信)로 막부화가(幕府畵家 -우리의 도화서 격)이다.

 

* 필자가 감히 '포대기려도(布袋騎驢圖)'라 제(題)하여 본다.

 

 

족자를 보관해온 손 때가 잔뜩 묻은, 오동나무함도 하도 오래돼 갈라지고,

'布袋 探幽筆'이라는 먹글씨도 희미해졌다.

 

 

 

 함두껑의 갈라진 틈을 이번에 화학접착제로 떼웠다. 이 함을 만든 이의 낙관도 두껑 안 아래 왼쪽에 보인다(붉은 도장). 

자세히 살펴보니 쇠못 하나 안쓰고, 모두 나무 못으로 밖아 만들었다.

역시 일본인들은 이런 사소한 데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