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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하곡학(霞谷學)의 접점-한강문학 만추 세미나

한상철 2017. 11. 9. 12:42

2017. 11. 8 (수) 한강문학(발행인 권녕하)은 '문학과 하곡학의 접점을 주제'로. 강화도에서  2017년 만추 세미나를 열었다.(당일 참가회비 3만원)

1. 8:30 남인사동 마당 집결. 그린 고속관광.

2. 10:50 ~13:40 강화향교 유림회관 3층 세미나실. 이강철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시 낭송. 토론; 좌장 성기조. 발제자 이경룡(하곡서원 원장. 필자가 해설한 '정제두' 한시 보충자료로 발표). 김병총(소설가). 정광수(해동문학 발행인), 김귀희(문학박사). 패널 한상철(강화중심 대표6인 한시 해설-강화문인협회 '고수진' 부회장이 '이규보' 시 낭독).  신미호,고혜선의 2인무 선비춤 등. 약 1시간 연장.

3. 13:50~ 점심 '일억조식당'에서 젓국갈비

4. 14: 50!~  도보로 중앙시장, 용흥궁 등 관람(손윤경 한두뼘갤러리 대표 안내)

5. 하곡 정제두 묘소-이경룡 해설

6. 명미당(이건창 생가) -  〃

7. 이규보 묘소- 〃

8. 18시 경 강화대교 부근  '콩나물국밥'집에서 석식.

9. 20:10 아침 출발장소로 귀환

10. 근처 '두리가'삭당에서 막걸리 담소, 자체 평가회; 김병총, 김오연. 정윤근 등 8명.

* 기념품; 비누 1개, 야외용 식기 1점.

 

* 졸저 한시집 『북창』 3권은 강화향교 전교 김용은, 동 사무국장 이정운, 유도회 강화지부장 유탁무 등 제씨. 시조집 『산정무한』 3권은  이경룡. 손수진, 권수홍 등 제씨. 풍치시조집 『명승보』는 종일 수고한 '손윤경' 씨에게 서명 후, 각각 증정.

* 옛 직장 동료인 '김오연' 한국경우펀딩(주) 부회장을 30년 만에 만나고. 옛 문우인 권숙이(권수홍으로 개명, 강화 거주) 시인을 약 14년 만에 조우하다.

* 2017.10. 27(금) 강화군 주최 제14회 강화양명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하곡학, 인문학으로 다가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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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중심 대표6인 한시-한상철 選. 세미나 자료집 제17~23쪽 전재.

 

강화중심 6인 한시 (김택영, 이건창, 이건승, 이규보, 정인보, 정제두)

 

서사(序詞); 강화도는 기가 강한 섬이다. 민족의 젖줄 한강, 임진강 담수가 합류해 서해 함수(鹹水)의 기운을 받아 생기의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고로 우국충정지사가 많고, 뛰어난 문객도 많았다. 양명학파(陽明學派)로 불리는 강화문사 6인을 선별해, 한시 각 한수 씩 소개한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하고, 원문의 시의(詩意)를 최대한 살려 현대감각으로 풀이했다. 강화는 통일 후, 미래 수도권의 역사관광중심지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1. 김택영

聞雁(문안)

-기러기 소리를 듣다

 

明河初灩別書堂(명하초염별서당); 은하수 처음 일렁일 적 서당을 나섰는데

錦水邊山驛路長(금수변산역로장); 금강을 거쳐 변산 가는 길 아득히 멀고도 머네

鴻雁後飛過我去(홍안후비과아거); 기러기 뒤에서 날다 나를 앞질러 지나가니

秋風秋雨滿江鄕(추풍추우만강향); 가을바람 가을비가 강 마을에 가득하네

 

* 김택영(金澤榮 1850~1927); 본관은 화개. 자는 우림(于霖), 호는 창강(滄江소호당주인(韶護堂主人). 아버지는 개성부 분감역(分監役) 익복(益福)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윤희락(尹禧樂)의 딸이다. ()의 황현(黃玹), ()의 이건창(李建昌)과 더불어 한문학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가로 불렸으며, 역사서술에도 힘을 기울였다.(다음 백과)

 

2. 이건창

北漢失路(북한실로)

-북한산에서 길을 잃고

 

丹霞欲躡愴難梯(단하욕섭창난제); 붉은 노을 질 때 산 오르려니 참 힘드네

絶頂彷徨日已西(절정방황일이서); 꼭대기서 헤매느라 해는 벌써 서산에 지고

海色纖如通澮畎(해색섬여통회견); 밭도랑인양 저 가느다란 바다색이여

雲容深不辨山谿(운용심불변산계); 구름 자욱하여 산인지 계곡인지 모르겠네

 

* 이건창(李建昌 1852~1898);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兒名)은 송열(松悅). 자는 봉조(鳳朝, 鳳藻), 호는 영재(寧齋).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시원(是遠)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상학(象學)이다. 출생지는 개성이나 선대부터 강화에 살았다. 강위(姜瑋김택영(金澤榮황현(黃玹)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용모가 청수(淸秀)하였으며, 천성이 강직해 부정·불의를 보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친척·친구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는 특히 북한산을 사랑했다. 경재(耕齋) 이건승(李建昇 18581924)의 형이다.  

 

3. 이건승

合邦後入都(합방후입도)

-합방 후 도성에 들어와서

 

松栢森森日色昏(송백삼삼일색혼); 소나무와 잣나무는 울창하고 해는 저무는데

西風垂漏倚宮垣(서풍수루의궁원); 가을바람 부는 대궐 담에 기대어 눈물짓누나

關心祭器無人抱(관심제기무인포); 종묘 제기 걱정이어도 품고 갈 이 없어

亡國孤臣又後孫(망국고신우후손); 나라 잃은 외로운 이 신하 게다가 왕손 후예이니

 

* 망국의 심정을 읊은 귀중한 영사시(詠史詩).

* 이건승(李建昇, 18581924)은 조선 말기의 학자 겸 문인이다. 호는 보경(保卿), 경재(耕齋), 본관은 전주(全州)로 왕손이다. 그는 매천(梅泉) 황현(黃玹)과 깊이 교유하였고, 담원(薝園) 정인보(鄭寅普)의 스승으로서, 양명학을 그에게 전수하였다. 을사조약(190511)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자, 홍승헌(洪承憲정원하(鄭元夏)와 함께 자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06(고종 10)에는 강화도 사기리(沙磯里)에 계명의숙(啓明義塾)을 설립해, 교육으로 나라를 살리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지지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만주의 회인현(懷仁縣)으로 망명한다.

 

4. 이규보

美人怨-回文(글을 되돌림)

-미인의 원망

 

順讀(순독)

腸斷啼鶯春(장단제앵춘); 꾀꼬리 우는 봄날 애간장 타는데

落花紅簇地(낙화홍족지); 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구나

香衾曉枕孤(향금효침고); 향긋한 이불 새벽베개는 외롭기만 하여*

玉臉雙流淚(옥검쌍류루);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누나

郞信薄如雲(랑신박여운); 님의 약속 믿음 없기 뜬구름 같고

妾情搖似水(첩정요사수); 이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누나

長日度與誰(장일도여수); 긴긴 밤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皺却愁眉翠(추각수미취); 수심에 찡그린 눈썹을 펼 수 있을까

 

逆讀(역독)

翠眉愁却皺(취미수각추); 푸른 눈썹은 수심 겨워 찌푸려 있는데

誰與度日長(수여도일장); 뉘와 함께 긴긴 밤을 지내볼까

水似搖情妾(수사요정첩); 강물은 내 마음인 양 출렁거리고

雲如薄信郎(운여박신랑); 구름은 신의 없는 님의 마음 같아라

淚流雙臉玉(루류쌍검옥); 흐른 눈물은 두 개의 고운 옥인양 *

孤枕曉衾香(고침효금향); 외론 베개 새벽 이불만 향기롭구나

地簇紅花落(지족홍화락); 땅 가득히 붉은 꽃이 떨어지고

春鶯啼斷腸(춘앵제단장); 봄 꾀꼬리 우는 소리에 애간장 타누나

 

* 대문장가 다운 절묘한 시다. 오언율시(五言律詩) 840자를 구()는 물론, 글자 전체를 완전히 뒤집어 읊어도 율()에 맞고 뜻이 통한다. 그는 수사(修辭)의 마술사이다. 이 회문시는 원류인 중국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물다. ‘강화문학관글을 그대로 전재(轉載)했다. 다만 순독 제 3구와, 역독 제 5구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필자가 다시 다듬었다. 뭇사람이 보는 것이니 만큼, 좀 더 정성을 기울여 풀이해줬으면 하는 부탁이다. 또한 그기는 유감스럽게도 독음(讀音)을 달지 않았다.(필자 주)

* 순독 제6구 제3자와, 역독 제3구 제3자 가 ’(인터넷 검색 불가) 자로 되었으나, 자의 오기임.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 시대의 시인이자 철학자. 호탕하고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가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과거에 여러 차례 떨어졌다.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와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이다. 백운거사라는 호를 통해 그가 산촌에 한가롭게 은거하면서 인생을 달관한 멋스러운 일생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삼혹호 선생이라는 호는 세 가지를 몹시 좋아하여 붙여진 것으로서, 그 세 가지란, 거문고와 술과 글을 일컫는다. 몽고 침입 때 강화에서 살았다.(백과사전, 위대한 철학자들은..)

 

5. 정인보

獻忠武公(헌충무공)

-충무공에게 바침

 

一誓海山立(일서해산립); 한번 맹서하니 바다와 땅이 서고

綱常於百代(강상어백대); 사람의 도리(綱常)는 백대에 전하네

再造乾坤無(재조건곤무); 하늘과 땅이 없어 다시 세워도

伐矜於當時(벌긍어당시); 공을 자랑하지 않고 그저 때가 되어 그리 되었다 하네

成仁取義精(성인취의정); 어질음을 이루고 바름을 정성스레 취해

忠光於檀聖(충광어단성); 충절이 빛남은 단군의 성스러움이라

補天浴日功(보천욕일공):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 공로로

德蓋於槿邦(덕개어근방); 덕은 무궁화 나라(우리나라)를 덮었네

 

* 補天浴日(보천욕일);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다는 뜻으로, 큰 공훈을 세움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신화에서 유래하였다.

* 이 시는 현충사 구 본당에 새겨진 주련(柱聯)이다. ‘홀로 전 민족을 구해낸 충무공께 바친 헌시다.

*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일제 강점기의 한학자·역사학자·작가이며, 대한민국의 언론인·정치인·작가이다.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본관은 동래, 자는 경업(經業), 호는 위당(爲堂), 담원(薝園), 수파(守坡), 미소산인(薇蘇山人)이다. 한문학의 대가로서 서지학·국사학·국문학에 두루 관여했다. 조선역사 연구의 바탕을 '단군조 이래 5,000년간 맥맥히 흘러온 얼'에서 찾고, 한민족은 곧 ''임을 강조한다. '국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그 연구의 기초를 '실학'에서 찾았다. 1946년 민족사에 어두운 국민에게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조선사연구를 펴냈으며, 주자학자들의 공리공론과, 존화사상을 없애기 위해 유학의 개혁을 주장했다.

 

6. 정제두

山溪(산계)

-산의 계곡

 

涓涓流出愛無情(연연유출애무정); 졸졸 새어나오니 정 없음도 사랑해

好看纖源一脈淸(호간섬원일맥청); 보기 좋아라 실낱같은 근원에서 한 줄기 맑은 물

去會江湖千萬里(거회강호천만리); 흘러가다 강과 호수 천만리로 모이나니

洪波誰識此中生(홍파수식차중생); 누가 알겠는가 큰 물결도 여기에서 생긴 것을

 

歷盡千巖萬壑艱(역진천암만학간); 수천 바위와 많은 골짜기 험한 곳 다 지나지만

如何日夜不曾閑(여하일야불증한); 어찌하여 밤낮으로 한가하지 못 하는가

滔滔萬里奔歸意(도도만리분귀의); 도도히 수만 리를 바삐 돌아가는 뜻은

只在滄波大海間(지재창파대해간); 단지 푸른 파도 일렁이는 큰 바다에 있고 싶어서라오

 

*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읊었다. 하곡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 명징(明澄)한 서정시다.

* 정제두(鄭齊斗 1649~1736); 서울 출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추곡(楸谷)이다.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조부는 우의정 정유성(鄭維城)이다. 부는 진사 정상징(鄭尙徵)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호조판서 이기조(李基祚)의 딸이다.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문인이다.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펼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건승 한시 제3번 추가. 2017. 9. 25 이 메일로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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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 한국한시협회 회원. ()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로 한시집 北窓, 풍치시조집 名勝譜5권이 있다.

 * 《한강문학》 제11호(2017년 겨울호) 제236~242쪽 수록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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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미당(明美堂, 이건창 생가) 문학비에 새겨진 한시 소개 

崧陽道中(숭양도중)-숭양 가는 길에

 

崧陽六載五經過(숭양육재오경과); 숭양(개성)을 6년 사이 다섯 번 지났는데

不見扶山與彩霞(불견부산여채하); 부산동과 채하동을 둘러보지 못했네

細數一生遊宦事(세수일생유환사); 꼼꼼히 세어 보니 한생을 벼슬살이로 보냈지만 *

會心偏少役形多(회심편소역형다); 마음에 맞는 일보다는 몸만 고달팠네          (번역 한상철)

 

*  이건창 선생의 생가는 화도면 사기리에 있고, 대문 문간방을 지나면 앞마당 안방 건물 대청마루에 堂號 '明美堂' ('황현'의 낙관이 있으나. 실제는 아님)현판이 있다. 바깥 마당 대문 쪽으로 향해 서서 오른쪽으로 '명미당 이건창 선생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 숭양; 崧山(숭산, 즉 송악산)의 남쪽, 즉 개성. 부산동 채하동; 송악산의 명승지. 출처; 한국문인협회 강화지부.

* 제3구 풀이가 매끄럽지 못해, 필자가 다시 다듬었다. (원래 풀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벼슬살이에)

 

 

 

강화향교 유림회관 3층

 

 

 

단체사진.  사진은 다음카페 문예운동 이시은 제공(2017. 11. 9) 

 

 

 

* 이규보 묘소에서, 옛 직장 동료인 '김오연' 사장과 함께.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준수하다...

 

 

 

* 14년 만에 조우한 옛 문우 권수홍 여류시인.

 

 

 

* 세미나 자료집 총 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