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欄砂宿遇夜客(정란사숙우야객)
-강마을 정란에서 묵으며 우연히 밤손님을 만나다
이섭(李涉/唐)
暮雨蕭蕭江上村(모우소소강상촌) 해질녘 쓸쓸히 비 내리는 강마을에서
綠林豪客夜知聞(록림호객야지문) 밤중에 나를 알아보는 록림(도적떼)을 만났네
他時不用逃名姓(타시부용도명성) 때가 달라 이름과 성을 숨겨도 소용 없으니
世上如今半是君(세상여금반시군) 세상에 지금 그대 같은 사람이 절반이나 되오 (번역 한상철)
* 감상: 비록 도둑 두목에게 지어줬으나, 은연중 세상을 빗대, 당당하게 표현했다. 강기를 숨긴 완곡한 시다.(역자 주)
- 唐나라 때 태학박사(太學博士)를 지낸 李涉이 일찍이 구강(九江, 江西성)을 지나 환구(晥口, 현재 安徽성 安慶시 大觀구)에 이르러 도적을 만났다. 그들이 李涉 일행을 붙잡고 누구냐고 묻길래 종자(從者)가 `李박사`라고 대답했다. 무리의 어두머리가 "李涉 박사라면 을러메어 빼앗을 필요 없다"고 했다. 이어 "오랫동안 시명(詩名)을 들어왔다"며 "시 한 편이면 족하다"고 했다. 이에 李涉이 한 수 지어 주니 바로 위의 詩라 한다.
- 暮雨: 저물녘에 내리는 비.
- 知聞: 聞知. 들어서 앎.
- 綠林豪客: 綠林이란 도적떼를 일컫는 말이다. 전한(前漢) 말기에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한 뒤, 국호를 신(新)이라 고쳤다. 이어 제도를 개혁하였으나, 지나치게 서둘러 혼란만 키웠고, 백성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왕광(王匡)·왕봉(王鳳) 일당이 난민들을 모아 녹림산(綠林山)에 근거지를 두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 수가 금세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세력이 클 때는 5만 명까지 불어났다. 나중에 유수(劉秀, 光武帝)가 군사를 일으키자, 그에 합류하여 후한(後漢)을 세우는데 힘을 보탰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녹림병(綠林兵)이라 불렀다. 싸움을 할 때 적아(敵我)를 식별하기 위해 눈썹을 붉게 물들였으므로 적미군(赤眉軍)이라 부르기도 했다. 녹림은 원래 호북(湖北)성 형주(荊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王匡의 무리가 굶주린 백성을 모아 이 곳을 근거지로 도적질을 일삼았기에, 이후부터 도적의 소굴을 綠林이라 했다. 또 그 무리(火賊)를 녹림객(綠林客)ㆍ녹림호객(綠林豪客)ㆍ녹림호걸(綠林豪傑)ㆍ녹림호한(綠林好漢)이라고 불렀다.
*다음 블로그 청경우독 해수 경해에서 인용 수정(2021. 8. 6)
* 청말근대 심심해 ( 沈心海 ) 의 < 녹림 ( 綠林 )> (1891 年作 , 設色紙本 , 95×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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