致仕歸言懷效吳體(치사귀언회효오체)- (四首其三)
황중소(黃仲昭/明)
白日不照吾肺肝(백일부조오폐간) 태양이 나의 속마음을 비추지 않는데
曲學阿世誠何顏(곡학아세성하안) 참으로 무슨 낯짝으로 곡학아세를 하나
詩書聊堪遺孫子(시서료감유손자) 시서는 애오라지 손자에게 남길 만하고
杞菊亦足供盤餐(기국역족공반찬) 구기자와 감국 또한 요리로 내놓을 만하네
銅山鑄錢彼爲得(동산주전피위득) 동산에서 돈을 찍음은 득이 되지 않았고
瓦瓮灌畦吾所安(와옹관휴오소안) 질항아리 안고 밭에 물을 주니 내 편안하네
自笑無能成巧宦(자소무능성교환) 능력 없이 출세하는 관리가 되니 스스로를 비웃고
只合歸伴沙鷗閒(지합귀반사구한) 단지 돌아가 물새를 벗해 한가로이 지냄이 합당하리
- 曲學阿世: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한다"는 뜻. 자신의 뜻을 굽혀가면서까지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말한다. 평소 자신의 주의ㆍ주장과 소신을 뒤집고, 권력에 빌붙는 어용학자(御用學者)들의 그릇된 처세를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서한(西漢) 제6대 황제로 즉위한 경제(景帝)는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널리 구했다. 가장 먼저 산동(山東) 출신 원고생(轅固生)이 물망에 올랐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 轅固生이 물망에 오르자 조정 안팎에서 그를 비방중상(誹謗中傷)하는 학자들의 상소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景帝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轅固生을 등용해 박사(博士)의 벼슬을 내렸다. 景帝의 뒤를 이어 무제(武帝)가 등극한 뒤 轅固生을 다시 부름과 동시에 소장 학자 공손홍(公孫弘)을 기용했다. 公孫弘은 평소 轅固生을 시골 늙은이로 깔보며 무시했다. 그러나 轅固生은 전혀 개의치 않고 公孫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디 올바른 학문에 힘써 세상에 알려 주게.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公孫弘은 轅固生의 학식과 인품에 감복하여 지난날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 杞菊: 구기자(枸杞子)와 감국(甘菊). 기국차(杞菊茶).
- 盤餐: 접시에 담은 요리(盤饌).
- 銅山: 촉(蜀) 땅 엄도(嚴道)에 있던 구리광산(鄧氏銅山). 서한(西漢) 문제(文帝)가 총애하던 등통(鄧通)에게 銅山을 하사해 그곳에서 나는 구리로 돈을 주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돈을 등통전(鄧通錢)이라 했다. 景帝가 붕어한 뒤 武帝가 즉위하자 鄧通은 조정에서 내쳐졌고 가산을 모두 잃은 뒤 끝내는 굶어죽었다고 한다.
- 彼: 아니다(不).
- 瓦瓮灌畦: 포옹관휴(抱瓮灌畦). 항아리를 안고 밭에 물을 주다. 부족하고 뒤떨어진 것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 미련하고 못난 태도나 방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巧宦: 상관에게 잘 빌붙은 관리. 벼슬살이 처세가 교묘하여 잘 승진함.
- 只合: 다만 ∼하는 것이 합당하다.
*다음블로그 해수 경해에서 인용 수정(2021. 10. 15)
* 청대 ( 淸代 ) 냉매 ( 冷枚 ) 의 < 관전도 ( 灌田圖 )> 수권 ( 手卷 ) (1668, 絹本 , 29×134cm)
'14.명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淡泊(담박)/정약용(조선)-명시 감상 1,534 (0) | 2021.10.16 |
---|---|
月下寫竹影戱言(월하사죽영희언)/신위(조선)-명시 감상 1,533 (0) | 2021.10.16 |
嫦娥執桂圖(상아집계도)/당인(명)-명시 감상 1,531 (0) | 2021.10.15 |
菩薩蠻-留秋(보살만-유추)/정섭(청)-명시 감상 1,530 (0) | 2021.10.13 |
木蘭花(목란화)/안수(북송)-명시 감상 1,529 (0) | 202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