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또한 글을 남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자연을 보고 깨달으면 그만인데, 왜 흔적을 남길까? 도달키 위한 수단이기에 어쩔 수 없다. 선(禪)을 논하고, 신선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영혼을 태웠으니 어찌 마음의 재가 남지 않겠는가?’
한상철(漢相哲·62) 시조집 <仙歌-신선의 노래>의 서문이다. 겸손한 듯 보이는 말투지만 끝까지 다 읽으면 자신의 영혼을 태워 만든 남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 얘기하고 있다. 그만큼 속에서 묵히고 고뇌하여 탄생한 것이 이번 108편의 시조에 담겨 있다.
‘주인이 가난해도 그 집 개는 싫어 않듯 / 산꾼조차 외면하는 주걱턱 앞뒤 짱구 / 어미 산母山 못난인데도 원망 않는 새끼 산子山’
‘추산불살(醜山不殺)’이란 작품의 전문이다. 가볍고 쉬운 말로 쓰여 있어 얼핏 보면 작품이 헐렁헐렁해 보이지만 웬만큼 생의 쓴맛을 보지 않고선, 웬만큼 산을 타보지 않고선, 웬만큼 필력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경지에 닿아 있다. 무거운 내용을 무겁게 쓰는 이는 많으나 가벼우면서 깊이 있게 쓰는 경지는 흔치 않다. 산 좀 타봤다는, 글 좀 쓴다는 고수인 게다.
작품 밑에는 주석이 달려 있다. ‘추산불살 : 진실된 산꾼은 아무리 못생긴 산이라 해도 마음속에서 죽이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사람을 보기 싫다 하여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 것처럼……’등. 혹 시조를 이해 못하는 이가 있을까봐 시인은 작품마다 아래에 부연설명과 주석을 달아 놓았다. 작품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 편 한 편에 들인 열의와 정성이 큰 게다.
“그 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지금도 아프고요. 목, 가슴, 팔, 손이 굳어 옵니다. 근육 마비의 일종인데 냉풍입니다. 추운 해외 고산 원정을 너무 많이 다니고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와서 무리하게 등반을 하다 보니 몸이 이리 됐더군요. 아플 때 쓴 시입니다. 아팠기 때문에 더 깊어졌나 봅니다.”
한상철 전 서울시연맹 이사는 IMF 때 은행 지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때 받은 퇴직금으로 히말라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산을 미친 듯 누비고 다녔다. 산꾼이라면 누구나 원할 법한 그런 생활이지만 너무 무리하게 다닌 탓에 병을 얻고 퇴직금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아픈 와중의 시조들이지만 그래도 그는 ‘신선의 노래’라 달관하고 있다. 신선이라 하여 고고한 척하는 풍은 아니다. ‘음탕한 짓 벌이다가 가오리 좆 되었군’ 같이 해학적인 구절의 시조도 있다.
그는 책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 “팔리지도 않겠지만 판매에 기대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출판은 서둘러 진행했다. “혹시 이러다 건강이 더 악화돼 시조집을 못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픈 와중에도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이제껏 낸 시조집 중 가장 애착이 간다고 한다.
“나를 죽임으로써 나를 살릴 수 있고 나를 초월해야지 원하는 작품이 나온다”는 신선스러운 경지의 시인 한상철이다.
/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이구희 기자
피플] 네 번째 시조집 낸 前 서울시연맹 한상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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