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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합동 추모~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한상철 2011. 7. 5. 09:27

 

2011. 7. 2 (토) 오전 11시,  제4회 산악인 합동추모식이 국립공원 북한산 내 속칭(俗稱) 무당골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우이동 <O2 월드>에서(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서울특별시연맹 창립 제 46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으나,

여기 행사에는 불참하였다.

매년 서울시련 창립기념일에 (사) 대한산악연맹,(사) 한국산악회,(사) 서울특별시산악연맹 , 한국대학(大學)산악연맹

합동으로 작고(作故) 산악인에 대한 추모행사를 실시한다. 

 

 

 

태극문양이 선명한 현수막

 

 

관련 산악단체 소속 추모 산악인과, 탑비(塔碑)에 놓여진 헌화, 제물 등이 보인다.

 

 

좌로 부터 김재봉 대한산악연맹 전무이사,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박한성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자문위원, 이재옥 전 서울시련 이사. 필자(전 서울시련 이사)

 

 

왼쪽은 2009. 7. 11. 타계한 여류등반가 고미영의 동판이다. 팔장을 낀 채 소탈하게 웃는 그녀의 생전 모습을 새겼다.

여성으로서 세계최초의 8,000m급 이상 고봉 14개를 오르기 위해, 선배인 오은선과 경쟁하다, 

히말라야의 험봉 낭가파르밧(8,126m)을 2009. 7. 10. 등정한 후, 하산 도중 실족해 사망했다.

우리나라 여성등반의 기대주 였는데, 무리한 졸속(拙速)등반으로 만 42세(1967. 7. 3~2009. 7. 11)의 아까운 나이에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동판 아랫부분에 11개봉 등정기록이 보인다. 

그 오른 쪽은 우리나라 등반사상(登攀史上) 초유의 큰 등반사고로 알려진,

(사)한국산악회 소속  해외원정대 '설악산 조난10 동지'의 동판이다.

1969년 2월 14일  설악산 천불동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희성 외 9 분의 이름이 뚜렷하다.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16년(1970~1986년)이라는 길고 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겪은 다음,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자이안트(8,000m 이상) 급 14 개봉을 완등(完登)한, 살아있는 산악계의 초인적이고도 전설적 영웅,

<라인홀더 매스너-이태리 티롤 1944년생>의 제일성(第一聲)을 깊이 새겨 들을 만 하다! 

 

그리고 그는 등반동반자(登攀同伴者)인 동생 둘(2)을 "산신(山神)에게 제물로 바친 엄청난 댓가"를 치루고서야,

비로소 대기록(大記錄)이 달성될 수 있었다!

실로 비참한 영광이 아니겠는가?

 

 

최근 등산 관련행사가 많아 자주 만나는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과 담소를 나눈다.

 

 

화강암 탑비(塔碑)와, 영면(永眠)하는 산악인의 동판(銅板).

 

 

2008.7.6  (사단법인)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이 주도하고, 외 3개 산악단체가 공동건립한 묘비(墓碑).

둘레석에도 각종 동판이 부착되어있다.

 

 

어느 단체인지 모르지만, 제물(祭物)이 간결하고 정성스럽다.

 

 

급경사로 흐르는 아름다운 무당골 청류(淸流).

출입금지구역이다.

 

 

대자연 앞에 인간은 왜소하다! 무당골 바위에 이끼가 고색창연하다.

산하는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아! 덧없는 인생이여!

 

 이슬이 된 영혼 

                             한상철

산우(山友) 잠든 비(碑) 이슬 묻은 잔디여 구르는 진주        * 季語; 이슬

 

* 작고 산악인 합동추모제 에서, 우리말 하이쿠 한 수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