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쉼터

산중칠우쟁론기/박성용~패러디 산악문학

한상철 2016. 1. 14. 13:18




패러디 산악문학 - 산중칠우쟁론기(山中七友爭論記)

이른바 산중칠우(山中七友)는 산악인네 방 가운데 일곱 벗이니, 바위하는 선배는 암벽화와 안전벨트, 자일, 카라비너로 암장사우(岩場四友)를 삼았나니, 산중 걷기를 즐기는 산꾼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요.

이러므로 등산을 돕는 유를 각각 명호(名號)를 정하여 벗을 삼으니, 스틱을 장요부인(杖腰夫人)이라 하고, 버너를 화로각시(火爐閣氏)라 하고, 코펠을 정경부인(鼎擎夫人)이라 하고, 배낭을 금낭각씨(金囊閣氏)라 하고, 랜턴을 명낭자(明娘子)라 하며, 침낭을 우모부인(羽毛夫人)이라 하고, 물통을 수로할미라 하여, 칠우(七友)를 삼아 산중 산꾼네 아침 단장을 마치매 칠우(七友) 모여 종시(終始)하기를 한가지로 의논하여 각각 소임을 이루어 내었다.

일일(一日)은 칠우(七友) 모여 등산의 공을 의론하더니 장요 부인이 긴 허리를 자히며 이르기를,

“제우(諸友)는 들으라. 나는 산행 중에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또 무릎이 안 좋거나 다리가 아플 때 남녀노소 불문하고 나를 즐겨 찾으니 등산을 나 곧 아니면 어찌 이루리요. 이러므로, 산을 오르는 공이 내 으뜸 되리라.”

정경 부인 깨끗이 닦은 솥단지를 내보이며 이르기를,

“장요 부인아, 그대 아무리 잘 걸은들 먹지 아니하면 힘 제대로 쓰겠느냐. 내 공과 내 덕이니 네 공만 자랑 마라.”

화로 각시 얼굴에 홍조를 띠며 날랜 부리 돌려 이르기를,

“양우(兩友)의 말이 불가하다. 진주 열 그릇이나 꿴 후에 구슬이라 할 것이니, 등산에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하니 나 곧 아니면 산행을 어찌 하리요. 밥, 국, 찌개, 커피 등속의 먹을거리가 나의 날래고 뜨거운 입김이 아니면 오래 끓이며 짧게 끓여 마음대로 하리요. 장요 부인 지팡이 짚고 정경 부인 음식물 담아 낸다 하나, 내 아니면 공이 없으려든 두 벗이 무슨 공이라 자랑하겠느뇨.”

금낭 각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노하여 말하기를,

“화로야, 네 공이 내 공이라. 자랑 마라. 네 아무리 착한 체하나 진밥 된밥인들 내가 싸매지 아니면 네 어찌 성공하리요.”

수로할미 웃고 이르기를,
“각시님네, 웬만히 자랑 마소. 이 늙은이 수말(首末) 작지만 아가씨네 목마르지 아니하게 산행 도와 드리나니, 옛말에 이르기를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 뒤는 되지 말라 하였으니, 금낭 각시는 화로를 품에 안고 따라다니며 무슨 말 하시느뇨. 실로 얼굴이 아깝구나. 나는 매양 화로의 입에 질리었으되 낯가죽이 두꺼워 견딜 만하고 아무 말도 아니 하노라.”

명 낭자가 이르기를,
“그대네는 다투지 말라. 나도 잠깐 공을 말하리라. 한밤중 능선길 숲속길 누구로 하여 마음대로 활보하며, 험한 길도 나 곧 아니면 어찌 대낮처럼 다니리요. 산행이 미숙한 자가 들락날락 바르지 못한 것도 나의 눈길로 한번 비추면 잘못 들어간 흔적이 감추어져 어두운 길 더듬거리는 장요의 공이 날로 하여 광채 나느니라.”

우모 부인이 크나큰 입을 벌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기를,
“명 낭자야, 너와 나는 소임이 같구나. 그러나 명 낭자는 빛뿐이다. 나는 천만가지 산행에 아니 참여하는 곳이 없고, 가증한 산꾼들이 나를 홀대시 하여 추운 밤에 사시나무 떨 듯 한 것을 나의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면 굳은 몸 낱낱이 펴이며 혈색과 모양이 고와지고 더욱 높은 산을 만나면 소임이 다사하여 하루도 한가하지 못한지라. 등산이 나 곧 아니면 어찌 가능하며 더욱 바위와 얼음 타는 꾼들의 피곤함을 나의 품이 아니면 어찌 풀리며, 세상 남녀 어찌 쾌적한 산행을 즐기리요. 이러므로 작의 공이 내 제일이 되느리라.”

산중 산꾼이 이르기를,
“칠우의 공으로 등산을 다스리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으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요.”
하고 말끝에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우고 잠을 깊이 드니 장요 부인이 탄식하고 이르기를,

“매정하느니 사람이요 공 모르는 것은 산꾼이로다. 무릎 아플 때는 먼저 찾고 이뤄내면 자기 공이라 하고, 야영장에서 말 안 듣는 후배 때리는 막대는 나 곧 아니면 못 칠 줄로 알고 내 허리 부러짐도 모르니 어찌 야속하고 노엽지 아니리요.”

정경 부인 이어 말하기를,
“그대 말이 옳다. 배고파 밥 지을 때에는 나 아니면 못 하련마는 씻느니 아니 씻느니 하여 내 몰골이 누리끼리하고 밥 먹고 나면 구석에 내어 던지며 뚜껑을 숟가락으로 탕탕 내리칠 때는 불쾌하고 노엽기 어찌 측량하리요. 화로 각시 잠깐이나 쉬려고 달아나면 매양 내 탓만 여겨 내게 트집을 잡으니 마치 내가 감춘 듯이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좌우로 살펴보며 전후로 뒤져서 얻어내기 몇 번인 줄 알리요. 그 공을 모르니 어찌 애원하지 아니 하리요.”

화로 각시 한숨짓고 이르기를,
“내 일찍이 무슨 일로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악지성(妖惡之聲)을 듣는고. 각골통한(刻骨通恨) 하며, 더욱 나의 약한 팔로 펌프질을 하며 뜨거운 입김 쐬어 힘껏 등산을 돕는 줄은 모르고 마음 맞지 아니하면 나의 몸뚱이를 마구 흔들어 맨바닥에 패대기치니 어찌 통원하지 아니하리요. 사람과는 극한 원수라. 갚을 길 없어 이따끔 산꾼의 눈썹 머리카락을 태워 설한(雪恨)하면 조금 시원하나, 간흉한 수로 할미 밀어 만류하니 더욱 애닯고 못 견디리로다.”

금낭이 눈물지어 이르기를,
“그대는 데아라 아파라 하는도다. 나는 무슨 죄로 담고지형(擔苦之刑)을 입어 수시로 입을 쫙 찢으며 무겁고 냄새나는 것 담는 일은 나를 다 시키니 섧고 괴롭기 측량하지 못할레라.”

우모 부인이 근심에 싸여 두려워 말하기를,
“그대와 소임이 같고 욕되기 한가지라. 제 몸을 문지르고 멱을 잡아들어 조그만 주머니에 우겨 넣으니 황천(皇天)이 덮치는 듯 심신이 아득하여 나의 몸이 따로 날 적이 몇 번이나 한 줄 알리요.”

칠우 이렇듯 담론하며 회포를 이루더니 자던 산꾼이 문득 깨어 칠우더러 말하기를,
“칠우는 내 허물을 그토록 하느냐.”
수로 할미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여 말하기를,
“젊은 것들이 망령되어 생각이 없는지라. 저희들이 여러 죄 있으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여 원언(怨言)을 지으니 마땅히 곤장감이되, 평일 깊은 정과 저희 조그만 공을 생각하여 용서하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산꾼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할미 말을 좇아 그만 두려니, 내 손부리 성함이 할미 공이라. 꿰어 차고 다니며 은혜를 잊지 아니하리니 장비함을 지어 그 가운데 넣어 서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할미는 머리를 조아려 사례를 표하고 여러 벗은 부끄러워 물러나니라.

글 박성용 기자(slowman8848@dreamwiz.com)
일러스트 이재혁

emountain 제공 2002년 09월 100페이지에 실린기사 . (사)한국산악회 한산문예 2011. 8. 19 게재.

 

* 이 글을 쓴 박성용 기자는 필자가 아끼는 성실한 산악후배로, 지금 월간 《아웃도어》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