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蘇武廟(소무묘)/온정균(당)-명시 감상 2,414

한상철 2024. 10. 23. 18:32

蘇武廟(소무묘)

-소무의 사당

       온정균(溫庭筠)/당

蘇武魂銷漢使前 (소무혼소한사전) 소무의 혼백은 한나라 사신 앞에서 흩어졌는데

古祠高樹兩茫然 (고사고수량망연) 옛 사당과 높은 나무는 모두 무심하기만 하네

雲邊雁斷胡天月 (운변안단호천월) 구름 끝 기러기는 오랑캐 하늘에서 사라지고

隴上羊歸塞草煙 (롱상양귀새초연) 언덕 위 양들은 변방 초원의 연기로 돌아오네

迴日樓臺非甲帳 (회일루대비갑장) 고국으로 오던 날 누대는 그 장막이 아니고

去時冠劍是丁年 (거시관검시정년) 떠나던 때 관모와 칼은 청년의 것이었다지

茂陵不見封侯印 (무릉부견봉후인) 돌아가신 무제(능호)는 봉후인을 볼 수 없으니

空向秋波哭逝川 (공향추파곡서천) 헛되이 가을 물만 흐른 세월에 곡하노라 (번역 한상철)

역주1> 蘇武廟(소무묘) : 蘇武를 위하여 지은 사당인데,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長安 부근이라 추정한다. 그는 한(漢) 두릉(杜陵)사람으로, 자(字)가 자경(子卿)이다. 한 무제 天漢(천한) 원년(A.D. 100), 중랑장(中郞將)으로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 당해 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흉노 선우가 항복하라고 협박했으나, 굴복하지 않아 북해로 추방을 당해, 그 곳에서 양을 치며 괴로운 삶을 살았지만, 19년이나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소제(昭帝) 때 흉노가 한나라와 화친하고서야 비로소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고, 당시 소수민족의 일을 관장하던 전속국(典屬國)에 임명되었다.

[通釋] 소무(蘇武)가 그 당시 자신을 데리러 온 한(漢)나라 사신(使臣)을 보았을 때는 온갖 생각이 일어나 넋이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모셔둔 사당과 그 주변의 큰 나무들은, 그런 고단했던 삶과 복잡한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구름 가까이 나는 기러기는, 달이 떠 있는 저 북쪽 호(胡) 땅으로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한(漢)나라에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기에, 소무는 안개 낀 변방의 초원에서 양을 치며, 언덕을 넘어 돌아오곤 했다. 19년의 세월을 흉노 땅에서 보내고 漢나라로 돌아오던 날, 그 곳으로 사신을 보냈던 漢 武帝는 죽고 없었다. 그가 본 누대는 그가 오랑캐 땅으로 떠날 때 보았던 한 무제의 궁실이 아니었다. 胡 땅으로 사신을 떠날 당시 소무는 머리에 冠을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찬, 한창 때의 당당한 청년이었다. 이제 돌아왔어도 무제는 그를 볼 수도, 그에게 봉작(封爵)을 내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저 가을의 江을 보면서, 무상하게 지나가는 세월과 같은 강물에 눈물을 떨구기만 할 뿐이다.

* 다음카페 칭도마 북경노인 인용 수정.(2023.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