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산정무한·산악시조 제4집(세계2)

75. 조난 후의 악몽-禪詩

한상철 2018. 5. 9. 05:20

75. 조난 후의 악몽-禪詩


설동(雪棟)은 비좁은데 엉덩이 차고 시려

저승길 가는 도중 여우 토끼 어른대니

붙잡힌 탈옥수 마냥 힐끔힐끔 쳐다봐


* 주요장비를 아래 설원(雪原)에 놔두고 오는 바람에, 비상식과 보온의류를 비롯해 용구(用具)가 없어 비박조차 용이치 않다. 모두 지친 몸으로 힘을 합해 설동을 짓는다. 그나마 대원 하나가 챙겨온 스토브 덕분에, 눈을 끓여 마시며 추위를 이겨내고 밤을 지새울 수 있어 위안이 된다. “잠들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강박감과, 엄습해온 피로의 늪에서 서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며 졸음을 깨워준다. 몽롱한 상태에서, 서울의 여우같은 처(마누라), 토끼같은 자식(새끼)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간간이 초롱초롱 빛나는 이국 밤하늘의 별을 보며 교차하는 만감을 달래보긴 하지만, 시종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 고초가 뒷날(2006. 10) 나에게 중병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된다.

* 설동(雪棟); 비박용으로 눈을 파서 만든 눈구멍이나 눈굴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