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籌筆驛(주필역)/이상은(당)-명시 감상 2,409

한상철 2024. 10. 12. 07:08

籌筆驛(주필역)

-주필역에서(제갈 량을 그리워하며)

       李商隱(이상은)/당

猿鳥猶疑畏簡書(원조유의외간서) 원숭이와 새는 아직도 군령이 두려운 듯 하고

風雲常為護儲胥(풍운상위호저서) 바람과 구름은 늘 목책처럼 호위하네

徒令上將揮神筆(도령상장휘신필) 보람없이 상장군이 신이한 계책을 내놓았지만

終見降王走傳車(종견항왕주전거) 마침내 항복한 후주가 역마 타고 가는 것 보고 마네

管樂有才原不忝(관악유재원부첨) 관중과 악의는 재주가 있어 원래 욕되지 않았건만

關張無命欲何如(관장무명욕하여) 관우와 장비가 죽었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他年錦里經祠廟(타년금리경사묘) 지난 날 금리의 사당을 지나노라니

梁父吟成恨有餘(양보음성한유여) 양보음 읊고 나서도 한이 남았네 (번역 한상철)

籌筆驛(주필역): 옛 역의 이름으로, 터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광원현(廣元縣) 북쪽에 있다. 제갈 량이 위(魏)를 정벌하기 위해 출군하여 이곳에 주둔하면서 붓을 휘둘러 공문을 쓰고 책략을 내었다. ‘籌筆(주필)’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猿鳥(원조) : ‘魚鳥(어조)’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簡書(간서) : 본래는 죽간에 작성한 문서를 지칭하였는데, 여기서는 군령(軍令)을 말한다.

儲胥(저서) : 주둔한 군대가 방비를 목적으로 설치한 목책(木柵)과 울타리를 지칭한다.

上將揮神筆(상장휘신필) : ‘上將(상장)’은 상장군인데, 여기서는 제갈 량을 가리킨다. ‘揮神筆(휘신필)’은 제갈 량이 귀신같이 훌륭한 계책을 내어 전투를 지휘했음을 뜻한다.

降王走傳車(항왕주전거) : ‘降’은 항복할 항이다. ‘降王(항왕)’은 투항한 왕 곧 유선(劉禪)이고, ‘傳車(전거)’는 역거(驛車)이다. ≪蜀志(촉지)≫ 〈後主傳(후주전)〉에 “등애(鄧艾)가 성(城) 북쪽에 이르자, 후주(後主)가 널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 결박한 채 군루문(軍壘門)에 나아갔다. 등애(鄧艾)가 결박을 풀고 널을 불사른 다음 맞이하여 만나보고, 명에 따라 후주를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제수하였다. 이듬해 후주가 가족을 데리고 동쪽으로 옮겨 낙양에 이르렀다.[鄧艾之城北 後主輿櫬自縛 詣軍壘門 艾解縛焚櫬 延請相見 因承制拜後主爲驃騎將軍 明年 後主擧家東遷至洛陽]”라는 내용이 있다.

管樂(관악) : 관중(管仲)과 악의(樂毅)를 말하는데, 관중은 춘추시대 제(齊)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루었고, 악의는 연(燕) 소왕(昭王) 때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제갈 량은 평소에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자주 빗대었다.

忝(첨) : 욕되다는 뜻이다.

關張無命(관장무명) : ‘關張(관장)’은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를 지칭한다. ‘無命(무명)’은 ‘非命(비명)’으로, 명대로 살지 못함을 말한다. 관우는 형주(荊州)를 지키다가 손권(孫權)의 부장 여몽(呂蒙)에게 공격당해 죽었고, 장비는 자신의 부장 장달(張達)과 범강(范彊)에게 죽임을 당했다.

他年(타년) : 왕년(往年)의 뜻이다. 시인은 당(唐) 선종(宣宗) 대중(大中) 5년(851) 성도에 이르러, 제갈무후(諸葛武侯)의 사당을 지나면서 〈武侯廟古柏(무후묘고백)〉을 지었다.

<참고>고백행(古柏行) -두보(杜甫)http://blog.naver.com/swings81/220873815309

錦里(금리) :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남쪽에 있는데, 이곳에 제갈무후의 사당이 있다.

梁父吟(양보음) : ‘梁甫吟(양보음)’이라고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옛 악곡명으로, 제갈량이 즐겨 읊던 곡조이다. ≪三國志(삼국지)≫ 〈蜀志 諸葛亮傳(촉지 제갈량전)〉에 “제갈 량은 직접 밭에서 농사지었고, 〈양보음〉을 즐겨 불렀다.[亮躬耕隴畝 好爲梁父吟]”라는 구절이 있다.

<참고>梁甫吟(양보음)/梁父吟(양보음)-諸葛 亮(제갈 량,孔明)http://blog.naver.com/swings81/220970154610

[通釋] 지난날 제갈 량이 주둔했던 이곳은 그때의 삼엄한 군기가 남아 있어, 사람에게 놀라는 원숭이와 새들은 아직도 그의 군령을 두려워하는 듯하고, 바람과 구름은 그 터를 호위하듯 늘 에워싸고 있다. 애석하게 제갈 량이 신이한 계책을 내놓았어도, 후주는 끝내 항복하여 역마를 타고 촉 땅을 떠나 낙양으로 가고 말았다. 관중과 악의의 재주에 비견되었으나, 그를 돕는 관우가 장비가 죽고 없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날 금리에 있는 그의 사당을 지나면서, 그가 즐겨 읊조리던 〈양보음〉을 부르니, 마음속에 끝없는 감회가 일어난다.

<원문출처> 籌筆驛/ 作者:李商隱 /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 네이버블로그 안분지족에서 인용 수정.(2022.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