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칼럼

나의 신행(信行)

한상철 2006. 10. 5. 18:46

나의 신행
한상철/ 대한산악연맹 이사

 


IMF 때 방황하던 심신

넉넉히 품어준 산과 사찰

명산.명찰 순례하며 下心

‘버림의 미학’ 담아 詩作



가을은 산의 계절이다. 불교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으로서 봉우리부터 활활 타오르며 산천을 태우는 단풍의 바다는 그저 황홀한 가을의 잔치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해탈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한순간 번개같이 선시 한 줄이 떠오른다.

“번개를 낚아채는 탁월한 저 선기에/ 가슴에 살 맞은 돌 느닷없이 범이 되어/ 목젖 밑 숨은 돼지를 갈기갈기 찧어놓다.”

조심스럽게 ‘해탈의 경지’라 이름을 붙여본다. 사람은 어려움에 닥쳐야 진정한 불자가 된다는 말은 나의 경우를 예로 든 것 같다. IMF란 국가적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개인의 위기와 직결됐다. 잘나가던 직장의 책임자로 있던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좀더 남아있어야 하는 아랫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고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나이에 가슴속에는 서늘한 허탈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허탈감은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산과 사찰이다. 어리숙한 불자에 불과했던 내가 본격적으로 불교의 형식과 내용에 심취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산도 마찬가지다. 산이란 넓은 대지는 바로 부처님의 품처럼 넉넉하고 편안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산과 부처님은 나에게 동일한 단어가 됐다. 가벼운 짐만을 메고 전국의 명산 명찰을 구도하듯이 순례를 했다. 낮에는 산을 오르고 밤에는 그 산이 품고 있는 산사에 머물며 예불과 기도를 했다. 그토록 뜨겁고 허탈했던 마음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중 〈임제록〉의 ‘수처작주’ ‘무위진인’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임제록〉중에서 “대덕아, 삼계가 불안한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이곳은 그대들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무상이라는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 한 찰나 사이에 귀한 사람, 천한사람, 늙은이 젊은이를 가리지 않는다. 만약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달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하여도 끄달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대목은 지금도 나의 삶에서 금과옥조같은 지침서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불안한 마음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늘 찾는 산사에서 아침예불 108배 그리고 참선이 나의 삶을 안정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통스런 육체적인 고행을 감내하며 오른 정상에서의 기쁨 보다는 아래로 아래로 하산해 도달하는 종착지의 편안함이 주는 거대한 버림의 미학이 나를 기쁘게 한 것이다. 그때부터 잃어버렸던 시심(詩心)이 싹트기 시작했다. 선사스님들의 말처럼 내가 나를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틈틈이 불교적 심미안을 담은 시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시조집 〈산정만리〉이다. 요즘 또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선사스님들의 선시다. 비록 수행자는 아니지만 시인으로서 용기있게 선시의 세계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나의 접근은 조금씩 낙엽처럼 쌓여가고 있다. 오늘도 신발끈을 묶고 산사로 향한다. “보리수 가지 꺾어 빗장을 걸었어라/ 달빛을 촘촘 엮어 명주이불 꾸몄더니/ 귀또린 잎 그림자 부채로 투정한 산 재우네”란 ‘산사의 밤’이란 시가 생각난다. 산이여 부처님이여. 그것은 내 마음의 전부다.

[불교신문 2169호/ 10월12일자]

 


* 본문 시조 2수는 내문서 산가 8-30, 산가 9 -2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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