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칼럼

미생의 신의

한상철 2006. 11. 20. 10:07

[칼럼/여시아문] 미생의 신의

한상철/ 시인

미생지신(尾生之信), 약간은 생소한 고사성어다. ‘굳게 신의(信義)를 지킴’을 비유하거나 ‘우직(愚直)함’을 비유할 때 쓰인다. 춘추시대 노(魯)의 미생(尾生)이 어떤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각이 지나도록 여자는 오지 않고 때 마침 큰 비로 강물이 불어났다. 미생은 떠나지 않고 다리기둥을 붙들었지만 끝내 죽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바보스런 느낌마저 든다. 과연 그럴까.

약 열흘 전 욕실(浴室) 보수문제로 담당자에게 손전화를 걸어 “월화 이틀 사이 오겠노라”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펑크 내는 바람에 2일간 일정을 완전히 망쳐놓고 말았다. 다시 전화를 했더니 사과도 없이 그동안 바빴다는 핑계로 “목요일 오전 중에는 틀림없이 가겠다”라고 약속하기에 철석같이 믿고 그날 일정 전부를 포기하고 종일 대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위약(違約)을 해버려 몹시 불쾌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분노를 억제한 후, 한번 더 속는 셈치고 다짐을 받아두었다. 다행히 이튿날에는 약속을 지켜줘 정해진 시각 안에 용무를 마치고, 혼사참석 등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1주일 가운데 3일을 공치고 말았다. 그 편리한 손전화는 무엇에 쓰려고 통지 한번 안 해줄까. 역지사지가 된다면 그는 어떻게 여길 것인가. 한번 쯤 생각해 볼 문제다. 복잡다단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바쁘다. 그러기에 손전화는 더욱 필요하고 시간을 금처럼 쪼개 쓰는 이들에게 약속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옛날에도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약속을 지켰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약속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약속을 할 때에는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게 서로 간 신의를 지키는 기본예의다. ‘쉽게 한 약속은 쉽게 깨진다’는 속설이 들어맞는다. 신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그래서 각국의 민법전에는 공통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을 법언(法言) 제1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신의를 뒷받침 해주는 게 바로 ’성실한 약속의 이행‘인 것이다.

위약을 밥 먹듯이 하는 자가 둘러대는 아전인수격 해석과 궤변이 난무하는 세상에 ‘미생지신’이 던져준 함의(含意)는 실로 크다. 우직이 꼭 ‘어수룩하다’ 라고만 할까. 아니다. ‘꿋꿋함’이 버텨 있기에 어리석게 미련하게 보일 뿐.

[불교신문 2279호/ 1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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