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칼럼

가을의 소리!

한상철 2006. 10. 23. 18:26

칼럼/ 여시아문] 가을의 소리

한상철/ 시인

달빛 교교(皎皎)한 적요(寂寥) 흐른 산사에서 한밤의 풀벌레소리를 한번 들어보았는가? 속세에 찌든 모든 망념(妄念)은 사라지고 대자연이 토한 묘음(妙音)이 온통 폐부로 빨려들어 갈 것이다. 몰아지경(沒我之境)! 중생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절후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순환한다. 올해는 7월 윤달이 있어 한낮은 늦더위가 제법 위세를 부리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은 선들선들하다. 23일은 첫서리가 내리는 상강이다.

초목의 잎을 시들게 하고 겨울에 대비토록 미리 알려준다. 소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산천도 여름내 참았던 울음을 토한다. 거문고와 대금 가락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대숲에 이는 바람과 섬돌 밑 귀뚜라미소리를 당하겠는가?

가을은 숙살(肅殺)의 계절이다. 한때 성했던 생물을 죽이고 만물을 고요에 빠뜨린다. 푸름과 아름다움을 다투던 풀과 나무는 누렇게 변하고 바람이 내뱉는 소리는 청명하면서도 처량하다. 여기서 우리는 ‘서늘한 가을의 철학’을 배우며 인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대해 고뇌한다.

일찍이 구양수(歐陽修)는 천하의 명문 ‘추성부(秋聲賦)’에서 “아하 슬프다! 이는 가을의 소리로구나(此秋聲也)! 어찌하여 왔는가(胡爲乎來哉)?” 라고 ‘자연의 소리’를 애절하게 읊고는 “추성을 인생을 깨우치게 하는 호재”로 갈파했다.

지금 사바세계의 가을소리는 시끄럽기 한량없는 ‘혼란의 소리’로 가득차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끄달리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자연으로 돌아가 가식에 찬 ‘인위적 소리’보다, 청아(淸雅)한 ‘본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쟁에 이기려는 ‘강한 소리’ 보다 겸허의 미덕인 ‘부드러운 소리’로…

산하로 뛰쳐나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정관(靜觀)을 즐기시라! 육안(肉眼)으로 보는 ‘글의 소리’가 아닌, 심안(心眼)으로 읽는 ‘귀의 소리’로.

“쏴아아!” ‘대바람소리(竹風)’와 “졸졸졸!” ‘여울소리(灘聲)’를…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소리다.

[불교신문 2271호/ 10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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