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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희귀한(文姬歸漢)

한상철 2011. 1. 28. 14:29

※ 명대(明代) 화가 진탁(陳鐸)의 <문희귀한(文姬歸漢)>

 

胡笳十八調凄其  勝似河梁然別離
一代奸雄情不薄  千金竟爲贖文姬
(호가십팔조처기 승사하량연별리
 일대간웅정불박 천금경위속문희)


<호가십팔박> 구슬프게 울리는데
개울가 다리에서 이별하듯 아름답네
한 시대의 간웅도 인정은 메마르지 않아
천금을 들여 마침내 문희를 데려왔다네


☞ 진탁(陳鐸), <문희귀한(文姬歸漢)> 화제(畵題)


- 胡笳十八: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 후한(後漢) 말의 대학자 채옹(蔡邕)의 딸 염(琰)이 흉노 귀족 좌현왕(左賢王)의 첩으로 끌려갔다가 조조(曹操)의 도움으로 한나라로 돌아올 때 여로(旅路)에 비감한 심정을 담아 읊었다는 비분시(悲憤詩).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은 채염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지칭하기도 한다. 중국 고금(古琴) 10대 명곡(名曲)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全108구 540자. 여기서 胡笳는 중국 북방 소수민족이 불던 고유악기의 하나.

 

채염(蔡琰)의 자(字)는 문희(文姬). "글을 쓰는 계집"이란 뜻이다. 그는 세 번 결혼하여 두 번이나 다 남편을 잃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다. 조조는 친구이자 스승의 딸인 蔡文姬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좌현왕에게 황금 1000량, 백벽(白璧) 10쌍, 비단 100필을 주었다 한다.

 

- 河梁然別離: 예전 사람들이 헤어질 때 주로 개울의 다리에서 작별했으므로 하량별(河梁別)이라 했다. 대표적인 예로 한나라 때 장안(長安) 동쪽 파릉(灞陵)에 다리(灞橋)가 있어 사람들이 이곳을 이별의 장소로 삼았다. 이 다리를 쇄혼교(鎖魂橋)라 했다. 비슷한 이름으로 단혼교(斷魂橋)·정진교(情盡橋)라는 명칭이 붙은 곳도 있다.

 

참고로 장안 서쪽과 북쪽에는 위성(渭城)의 함양교(咸陽橋)가 있었다. "渭城朝雨浥輕塵"으로 시작하는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일명 <위성곡(渭城曲)>은 이곳을 무대로 한 것이다. 

- 一代奸雄: 채문희의 귀한(歸漢)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조조(曹操)를 가리킨다. 조조와 동시대 인물로 인물평(月旦評)으로 유명했던 여남(汝南)의 허소(許邵)는 조조를 평하여 "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이라 하였다. 

 

※ 명대(明代) 화가 구영(仇英)의 <문희귀한(文姬歸漢)> 단선(團扇)
 

 

※ 명대(明代) 화가 구영(仇英)의 <문희귀한(文姬歸漢)> 수권(手卷)
 

※ 명대(明代) 화가 정운붕(丁雲鵬)의 <문희귀한(文姬歸漢)> 수권(手卷)
 

※ 명대(明代) 화가 우구(尤求)의 <문희귀한(文姬歸漢)> 수권(手卷) (1568年作)
 

※ 명대(明代) 화가 진홍수(陳洪綬)의 <문희귀한(文姬歸漢)>
 

※ 명대(明代) 화가 당인(唐寅)의 <문희귀한(文姬歸漢)> (1507年作)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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