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題任實公館(제임실공관)/김약수(고려 중기)-명시 감상 989

한상철 2021. 2. 3. 12:21

제임실공관(題任實公館)
-임실 공관에 대해 쓰다

 

     김약수(金若水)/고려 중기
老木荒榛來古溪(로목황진래고계) 노목이 우거진 옛 개울로 와보니
家家猶未飽蔬藜(가가유미포소려) 집집마다 여전히 나물조차 배를 못 채우네
山禽不識憂民意(산금불식우민의) 산새는 근심 겨운 백성의 마음도 모르고
惟向林間自在啼(유향림간자재제) 다만 숲 속 향해 마음대로 노래만 부르네

 

荒榛(황진) : 거칠고 무성함.

蔬藜(소려) : 푸성귀와 명아주풀.

自在(자재) : 자유롭게 아무 걸림이 없는 모양.

 

* 2025. 2, 25 사경우 씨가 본 블로그를 방문하고 남긴 방명록에 의하면, 고려 중기 문인이라 지적함. 관련자료(동문선 수록, 정민 교수 해설)를 재검토해 바로 수정함. 참고로 '근대 한국' 김약수(동명이인)의 자료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기에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둔다.

* 이하 자료는 참고사항임.

* 다음카페 가야불교산악회 무진장 님 인용 수정.(2012.11.15)

* 김약수(金若水, 1890~1964);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김해, 본명은 김두전(金枓栓)이며, 이명은 김두희(金枓熙). 아버지는 김은홍이다. 의열단 김원봉(金元鳳) 단장이 물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약수(若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김약수는 휘문의숙을 거쳐 1914년 관립경성공업전습소 응용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다니다가 1915년 12월 중퇴하였다. 6·25 전쟁 중 월북하여 1955년 북한의 인민경제대학 특설반에 입교하였고,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겸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59년 숙청되어 평안북도 벽지로 추방되었다. 1964년 1월 10일에 사망하였다.(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