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洪武丁巳奉使日本作(홍무정사봉사일본작)/정몽주(고려)명시 감상 2,000

한상철 2022. 9. 23. 07:56

洪武丁巳奉使日本作(홍무정사봉사일본작)

  - 홍무 정사년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지음

   

      정몽주(鄭夢周, 1337~1392)/고려

제3수

水國春光動(수국춘광동) 섬나라에 봄빛이 일렁이는데                        

天涯客未行(천애객미행) 천애(하늘 끝)의 나그네는 돌아가질 못하네

草連千里綠(초연천리록) 풀은 천리에 연이어 푸르고                            

月共兩鄕明(월공양향명) 달은 두 고을(일본과 고려)에 함께 밝구나

遊說黃金盡(유세황금진) 유세하느라 여비(돈)는 다썼는데                               

思歸白髮生(사귀백발생) 돌아갈 생각에 머리카락이 세어지네

南兒四方志(남아사방지) 사방을 떠도는 남아의 큰 뜻은                             

不獨爲功名(부독위공명) 혼자만의 공명을 위한 것은 아니라네

제4수

平生南與北(평생남여북) 평생 남과 북으로 떠다녀                             

必事轉蹉跎(필사전차타) 심사가 점점 뒤틀리는 구나

故國海西岸(고국해서안) 고국은 바다는 서쪽에 있고                          

孤舟天一涯(고주천일애) 외로운 배는 하늘 끝에 있네

梅窓春色早(매창춘색조) 매화 핀 창가는 봄빛이 이른데                         

板屋雨聲多(판옥우성다) 판잣집에는 빗소리 요란하네

獨坐消長日(독좌소장일) 홀로 앉아 긴긴 날을 보내자니                        

那堪苦憶家(나감고억가) 어찌 집 생각에 괴롭지 않을까  (번역 한상철)

 

* 감상; 이국의 비오는 날 풍광에다, 고국인 고려를 위한 충절과, 쓸쓸하고 괴로운 작가의 심정을 함께 풀어 놓은, 대학자 다운 명시다. 제 4수가 전체 11수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제5, 6구(頸聯)는 조신(曺伸)의 「소문쇄록」에서, '공치(工緻)의 절창(絶唱)'이라 했다.(한상철 주)

* 홍무(洪武) ; 중국 명나라의 초대 왕인 홍무제 주원장 때의 연호(1368~1398).

* 수국(水國) ; 일본의 미칭. 수국이라 하였음은 상대를 높여 칭한 처사다.

* 미행(未行) ; ()에는 아직 ~ 하지 못하다 라고 아직이라는 숨은 뜻을 동반한다. ()은 가다, 움직이다 등의 뜻이 있으나, 두 글자를 합치면 어디론가 가지 못하다. 여기서는 타국이니, 일을 다 마치지 못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다는 뜻이다. 정몽주의 시는 읽을 때 마다 느끼는 데, 그는  쉬운 단어(어휘와 수사법)을 좋아 한다.

* 배경; 평소 정몽주와 사이가 나빴던 이인임(李仁任, 고려후기 수문하시중, 개성부사,좌시중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등의 권신이 정몽주를 위해에 빠뜨리고자, 일본 사신으로 추천하였다. 이보다 앞서 나홍유(羅興儒)가 일본으로 건너가 왜구를 근절시켜 달라 요청 했으나, 오히려 오래 구금되어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정이 있기에 이인임 등이 정몽주로 하여금 구주(九州)의 패가대(霸家臺)에 가서 왜구의 단속을 요청하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태롭게 여겼으나, 정몽주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건너갔다. 그리고 우두머리를 감복시켜 후한 대접을 받고, 잡혀갔던 고려백성 수백명을 무사히 데려 왔다. 일본 지식인 승려들이 정몽주에게 시를 써 달라고 운집했다 하니, 그 담대한 마음과 시제를 짐작할 수 있다. 섬나라 일본에 봄빛이 짙어지는데도 여전히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를 하소연 했지만, 까마득히 이어진 푸르름과, 고향의 밝은 달을 등장시켜 그 기상을 높였다. 왜인들을 설득하느라 가져간 재물은 다 소진되고, 고향생각에 백발이 돋는다 하며 강개한 다짐이다. 이 처럼 먼 곳을 떠도는 이유가 "단순한 개인적 공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하여 한 번 더 뜻을 드높였다. 중국과 일본을 두루 여행했으니, 평생 남과 북을 떠돌아다녔다 할만 하다. 중국으로 사신 간 것 역시, 그의 정적들이 위험에 빠뜨리고자 계략을 꾸몄던 것이니, 심사가 편할 수 없다.

 

배를 타고 가노라니 서쪽으로 고려땅이 보이는데

망망대해에서 작은 배 하나에 몸을 싣고 있다.

왜국에 이르니 매화가 피어 고려보다 봄빛이 먼저 폈는데

봄비에 일본 전통가옥의 판자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매화를 보고 빗소리를 듣노라니 마음이 스산한데

협상을 하느라 지루한 나날이 이어져 더욱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 이 시에서 이른 '판잣집의 빗소리(板屋雨聲)'은 하나의 고사가 되었다. 조선후기 통신사들이 사신으로 가면서. 일본을 소재로한 죽지사(竹枝詞)를 많이 지었는데, 어김없이 정몽주의 이 '판옥우성'을 차운(次韻)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