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문 감상

靑玉案(청옥안)/신기질(송)~희미한 등불 -명문 감상(詞) 10

한상철 2014. 4. 24. 07:49

靑玉案(청옥안)

- 일명 원석(元夕-대보름 저녁)

                                    신기질/송

東風夜放花千樹(동풍야방화천수) 봄바람 부는 밤 천 그루 나무에 꽃 활짝 피는가

更吹落, 星如雨(갱취락, 성여우) 다시금 날려 떨어지고, 별은 비처럼 쏟아지누나 

寶馬雕車香滿路(보마조거향만로) 아름다운 수레 지나가니 길 가득한 향기

鳳簫聲動(봉소성동) 퉁소 소리 그윽이 울리고

玉壺光轉(옥호광전) 옥항아리 하얀 달님 서서히 굴러가니

一夜魚龍舞(일야어룡무) 밤새 어등 용등이 춤을 추네

 

蛾兒雪柳黃金縷(아아설류황금루) 머리에는 황금색 실로 만든 아아(娥兒)와 설류(雪柳)

笑語盈盈暗香去(소어영영암향거) 웃고 떠들며 은은한 향기 스치네

衆裏尋他千百度(중리심타천백도) 숱한 사람들 속에서 님을 천 번도 더 찾았는데

驀然回首(맥연회수) 문득 고개 돌려 보았더니

那人却在(나인각재) 그 사람은 저쪽

燈火闌珊處(등화란산처) 희미한 등불 아래 서있네

 

* 아아(蛾兒)와 설류(雪柳)는 당시 여성의 악세사리. 녀, 실 장신구 등.

* 란(蘭-艸): 가로막을 란, 쇠퇴하다, 바래다, 저물다. 란산(珊): 쇠잔하다, 시들다. 

*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의 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稼軒)으로, 사(詞)의 대가다. 그는 소식(蘇軾)이 문을 연 '호방파(豪放派)의 사'를 대성시켰다.  그의 일생은 애국적, 상무적인데다, 사(詞) 또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 해설; 신기질은 금나라 땅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에 양쯔강을 건너 남송으로 탈출한다. 남송의 수도 항저우에는 금나라와 오랜 전쟁을 치루면서, 두 가지의 기류가 흐른다. 금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원래 북송의 땅을 회복하자는 주전파와, 금과 화의를 통해 안정을 취하자는 주화파가 있었다. 대체로 주전파는 중앙정계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남송은 풍요한 강남의 물산을 바탕으로 민중은 어떤지 몰라도, 귀족층은 살기가 평안했다.  신기질의 '청옥안'은 이러한 세태의 단면을 보여준다. 정월 대보름 화려한 밤거리 축제의 현장에서, 지은 이는 어떤 사람을 찾는다.  사랑하는 연인인지, 가슴에 품은 큰 뜻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빗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의미는 심장하다.  

* 양계초는 예형관사선<藝蘅館詞選>에서 이렇게 '청옥안'을 평했다. "自憐幽獨 傷心人別有懷抱"(자련유독 상심인별유회포; 깊은 고독과 쓸쓸함이 묻어나서, 마음이 울적한 사람이 보면 또 다른 감회가 있다). 북송의 카이펑이 함락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휘종의 9번째 아들 조구가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항저우 린안에 정착하여 남송을 열고 나서, 숱한 곡절이 있었다. 장군 악비는 억울하게 죽었으며, 시인 육유는 불우하게 양자강 유역을 흘러다녔다. 이 두 사람은 항전의지가 강한 까닭에, 주화파에게 밀린 것이다. 신기질이 1160년 남송에 갔을 때도, 겉으로는 열렬한 우국충정의 지사로 환영을 받았으나, 정계의 주류에선 밀려나게 되고, 그 또한 평생 울분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 했다. 남송 정권에서의 주전파와 주화파의 권력다툼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정지상(묘청과 김부식의 갈등 사례)이 살던 때 금나라에 대해, 또 고려말기 명나라에 대해, 조선시대 청나라에 대해, 우리가 취했던 당시의 정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해설은 다움 블로그 설악산 (2013. 1. 8)에서 인용.


 

* 행초서는 다움 블로그 esder 77 에서 인용 (2013 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