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수필 평론

홍천9경, 철원9경 시조평/전산우-시산 제86호 특집

한상철 2017. 12. 13. 12:09

홍천9, 철원9경 시조평. 詩山86(2017년 하반기) 특집 2017. 12. 13

 

팔봉산에서 고석정까지

 

전산우(全山雨)/ 한국가곡작사가협회 부회장

 

한상철(韓相哲) 시인은 산악인이자 산악시조시인이다. 대한산악연맹 산하단체 및 임원을 역임하며 국내 명산 1,500여 회 등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하였다. 시인의 발걸음은 우리나라 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를 비롯하여 히말라야, 페루, 스위스, 프랑스, 뉴질랜드, 타이완,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베트남, 중국 등 총 33곳의 해외 원정등반을 하였다.

 

시인이 산을 얼마나 애호하는지는 반산반인(半山半人)의 의미를 내포하는 반산(半山)’이라는 그의 호에서 알 수 있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산행을 고집한 산행 경력에서도 알 수 있다. 시인이 오른 산들은 추억거리나 자랑거리의 산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산들이 거느린 것들, 즉 산의 형상이나 생명들로부터 발현한 시심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 정제된 시편으로 거듭났다. 한시집(漢詩集) 북창北窓을 비롯해, 시조집 산중문답山中問答, 산창山窓, 산정만리山情萬里, 선가仙歌, 산정무한山情無限』, 『명승보 名勝譜까지, 층 엷은 산악시조문학에 한 획을 긋기에 이르렀다.

 

시산 86호에 특집으로 싣는 그의 시조는 강원도 홍천 9경과 철원 9경을 배경으로 한다.

 

홍천은 남한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군인데다, 명산대천을 품고 있어 곳곳이 절경으로 홍천 9경은 제1경 홍천 팔봉산(八峰山), 2경 가리산(加里山), 3경 미약골(美藥谷), 4경 금학산(金鶴山), 5경 가령폭포(可靈瀑布), 6경 공작산(孔雀山) 수타사(壽陀寺), 7경 용소계곡(龍沼溪谷), 8경 살둔계곡(生屯溪谷), 9경 삼봉약수(三峰藥水).

 

철원은 철의 삼각지대로 유명한 중부전선의 전략요충지로서 철원 9경은 제1경 고석정(孤石亭), 2경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 3경 직탕폭포(直湯瀑布), 4경 매월대폭포(梅月臺瀑布), 5경 순담(蓴潭), 6경 소이산(所伊山) 재송평(裁松坪), 7경 용양(龍楊), 8경 송대소(松臺沼) 주상절리, 9경 학저수지 여명(黎明)이다.

 

시인은 하늘이 내린다고들 한다. 그렇듯 시인이 되는 것, 시를 잘 쓰는 것은 복중의 복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시인과 오랜 세월 문우(文友)와 산우(山友)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 시인은 시집을 낼 때마다 필자의 두 손에 시집을 선물하였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이렇게 산과 자연을 오묘하고 웅숭깊게 그려낼 수 있을까?’였다. 바로 그 시인이 홍천 9경과 철원 9경을 노래한 것이다.

 

모더니즘 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과 태도 아래 자유시들이 난무한다. 시의 가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시의 본질은 가당찮게 훼손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시의 위치가 그러할진대 우리 문학에서 고유의 시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무엇보다 막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산행과 산시를 동시에 추구하는 산악시조시인의 희소함에 있어서이랴. 이러한 마당에 산악시조라는 고독한 장르에 흔들림 없이 천착(穿鑿)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시인은 연시조나 장시조가 아닌, 3612소절, 45자 이내의 단수(單首) 속에 온 세상 만물을 압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쉽지 않은 그의 발걸음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이제 시인의 산악시조를 몇 수 들여다본다.

 

여덟 봉 다 오르면 팔고(八苦)가 사라지랴

메기를 낚으려다 기암이 걸린 청강

뜬 구름 애착 버리고 모래찜질 즐겨요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팔봉산'은 해발 302미터인 산이다. 봉우리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홍천강물이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봄과 가을에는 등산객이 많이 찾아오고,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교적 나지막한 산임에도 암릉이 이어져 산행은 만만하지 않다. 시인은 8봉을 8고에 비유하면서 인생길을 끊이지 않는 고통의 연속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 한가한 강태공이 던진 낚시에 걸려 올라와 길게 누운 것이 메기를 닮은 팔봉이라는, 재미있는 착상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 술 더 떠 인생은 한바탕 뜬구름이니 애면글면하지 말고, 청강 모래톱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자는 제안에 이르러서는 긍정의 미학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다음은 한탄강 제1의 명소 철원의 고석정을 읽는다.

 

굽이친 한탄강에 외롭게 버틴 바위

솔향에 취해 졸다 미끄러진 물그림자

짓누른 세월 무게로 임꺽정도 못 건져

 

한탄강은 크고 넓고 높다는 뜻의 과 여울 개의 뜻인 이 어울린 순 우리말 이름으로, 이를 한문으로 음차한 이름이다.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발달했고, 유역에는 고석정을 비롯한 철원 8경 등 자연 경관이 뛰어난 경승지가 많다. 고석정은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강가에 우뚝 솟은 큰 바위를 고석정이라고도 한다. 강심에 비친 고석정의 표현(중장의 솔향에 취해 졸다 미끄러진 물그림자’)이 절창이다. 종장 전구에서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유구한 역사물임을(‘짓누른 세월 무게로’), 종장 후구에서 물속 그림자를 건질 재간은 그 누구에도 없음을(‘임꺽정도 못 건져’) 임꺽정의 활동무대였던 이곳에 결부시킨 것 또한 멋진 도입이 아닌가.

 

이렇듯 시인은 우리 산악시조문학을 견인하는 몇 안 되는 첨병이고 본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인의 무리한 국외 원정등반이 중풍의 일종인 냉풍이라는 중병을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산행의 결과물로 보상받는 체험시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천재적인 작가들의 요절[김소월(32), 김유정(29), 이상(27), 전혜린(31), 기형도(29)]로 인해 뛰어난 문학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상실했는가? 부디 시인의 건강이 하루 속히 회복되어 보다 아름다운 산악시조를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


 

* <시산> 제86호 앞뒤 표지. 다음카페 시산 자유게시판 전호영 2017.12.13 제790번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