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수필 평론

<산중문답> 평론 자료-故 장백일 교수 서평(조선일보 월간 산 2001년 9월호)

한상철 2017. 8. 23. 11:43

산에서 캐낸 시심
개성있는 서정성 돋보여

한편의 시는 시인의 진솔한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으로 구하고 호소하는 바가 거기에 심어져 있어서다. 그래서 어떤 시인도 시속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으로 그린다.

시인 한상철은 기실 오랜 산사람으로서의 체험을 갖는다. 산을 사랑하고 산과 함께 살며 산에서의 시작(詩作)활동으로 인생을 깨닫는 시조시인이다. 그것도 시조 본래의 율격과 시 정신을 하나로 융해시키는 개성 있는 서정성을 갖는 시조인 이다. 그의 시 정신의 밑뿌리를 자리잡고 있는 시조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산에서 터득한 인생론적인 시상의 사유가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 이 시인의 시인상으로 읽혀진다.

그러하기에 이 시인의 시제(詩題)는 산이다. 그러나 그 산들은 한가롭게 앉아 산수를 완상하는 그런 산이 아니다. 땀으로 빚는 체험의 산이요, 그 산을 오르내리는 경건한 시조시인의 산이다.

이 산시조집은 제1부 12월(달을 넘기며), 제2부 24절(철이 바뀌고), 제3부 72후(候·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를 살펴 번뇌를 하나씩)로 구분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1년 365일의 갖가지 산의 얼굴과 표정과 그 산만이 갖는 산정(山情)을 시조로 읽으며 섭렵한다. 거기에는 백두대간이 있고 안나푸르나가 있고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구아가 있다. 그 산력이 말하듯 산의 오묘한 미학을 체험으로 터득했고, 그로써 인생론적인 의미도 음미했음이다.

'연보라 치마 올린 황녀와 토끼사랑
봄이야 눈감아 주랴만 못믿을손 참새로다
참새야 바람 좇지 마라 나비 알까 두렵다'

시조 '얼레지꽃 스캔들'이다. 산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음이다. 바로 여기에 위대한 자연 질서와 섭리의 아름다운 조화가 어울려 있음이다.

'삼신산 단전에서 훈기를 가다듬고
천지로 날숨 토해 대륙 보고 포효하니
삼천리 호랑이 등뼈 옹골차게 뻗어라'

시조 '백두대간' 이다. 백두대간은 조국의 상징이다. 그 기상을 '대륙 보고 포효하는 삼천리의 호랑이 등뼈'로 형상화한다. 그러면서 옹골차게 뻗어가는 조국이 기를 다그친다. 이 또한 산에 도전하는 산 사람이 아니고는 체험할 수 없는 호연지기의 기상을 심는다.

'댕그렁 현등사의 풍경이 울릴 때면
흰 구름 바람 따라 바위 뫼는 구름 따라
나그네 발길 따라 예불 낭낭 흐르네'

시조 '구름 따라 산 따라'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하나로 동화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 스스로가 자연이 되기 때문이다. 구름을 보면 구름 되고 나무를 보면 나무 되고 꽃 보면 꽃으로 화하는 나, 바로 여기에 나도 모르는 행복이 심어짐이다. 여기가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겨지가 아닌가. 세상은 역려(逆旅)요, 사람은 거기서 지새고 가는 나그네다. '나그네 발길을 따라 예불 낭낭 흐르'는 길은 곧 부처님과 하나되는 길이다.

'덕 갖춘 님이어늘 오탁도 마다 않니
구차한 삶 찌꺼기 그 언덕에 묻을세라'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안빈낙도 즐기세'

시조 '안빈낙도' 다. 자연과 하나 되는 산길에서 우리는 안빈낙도의 인생을 배운다. 탐욕도, 물욕이 빚는 번뇌도, 세상사의 고뇌도, 집착도 털어버리는 해탈의 경지에서 노닌다. 고통과 인내의 산행은 극락과 천당을 찾는 길이다.

저 유명한 영국의 산사람인 말로리는 기자가 "왜 당신은 산에만, 그것도 에베레스트만 오르는냐?"고 물었을 때의 유명한 대답은 지금도 우리 심금을 울린다.
"Because, it is there."

산악인은 그 'it'가 거기에 있기에 그로부터 생존과 존재의 의의를 캔다. 산사람이요 산시조시인 한상철의〈산중문답〉 또한 바로 그 'it'로부터 캐낸 그 나름의 진지한 인생문답이다.

장백일 문학평론가(국민대 명예교수)


* 다음카페 대간지기 '삼신산 단전에서 훈기를 가다듬고'. 유래와 역사자료실 (2007.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