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武則天傳(당무측천전)
葉顒(섭옹/元末明初)
天人共憤世皆嫌(천인공분세개혐)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개하고 세인이 모두 미워하는데
垂拱焉能二十年(수공언내이십년) 나 몰라라 내버려 두며 어찌 이십 년을 견디리오
誰信裙釵珠翠侶(수신군채주취려) 뉘라서 치마 두르고 비녀 꽂은 아녀자를 믿겠는가마는
反勝冠冕任英賢(반승관면임영현) 오히려 관록을 누르고 재능있는 이에게 일을 맡겼다네
☞ 葉顒(섭옹/元末明初), <唐武則天傳(당무측천전)>
- 垂拱: 唐나라 제5대 황제인 예종(睿宗) 이단(李旦)이 첫 재위 기간에 세 번째로 사용한 연호(685∼688년). 황태후로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던 실질적인 권력자 武則天의 年號로 보기도 한다. 垂拱은 원래 상(商)나라 마지막 왕이자 폭군이었던 주(紂)를 토벌하고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치세를 말한다. 수의공수(垂衣拱手)의 약자.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能: 견디다(耐).
- 裙釵: 치마와 비녀. 부녀자.
- 珠翠: 진주와 비취. 부녀자 또는 부녀자의 장식물.
- 冠冕: 벼슬 또는 벼슬살이(仕宦). 옛날 임금이나 관리가 머리에 쓰던 관.
- 英賢: 뛰어나고 슬기로움 또는 그런 사람.
- 武則天: 고종(高宗)의 황후였지만 서기 690년 예종(睿宗)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국호를 주(周)로 바꾼 뒤 16(690∼705)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이전 垂拱 4년을 합치면 20년을 헤아린다.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이를 고대의 주(周, BC1046∼BC771)와 구별해 `무주`(武周)라 부른다. 武則天의 이름은 무조(武曌). 병주(幷州, 현재 山西성 文水현) 출신이다. 14살 때인 637년 태종(太宗)의 후궁으로 입궁해 사품(四品) 재인(才人)이 되었다. 太宗은 그녀에게 무미(武媚)라는 칭호를 내렸고, 사람들은 무미랑(武媚嫏)이라 불렀다. 太宗이 죽은 뒤 황실의 관례에 따라 감업사(感業寺)로 출가했다. 高宗이 즉위한 뒤 그의 후궁으로 재입궁해 왕황후를 내쫓고 655년 황후에 올랐다. 황후가 된 武則天은 병약한 高宗을 대신해 정무를 처리하며 원로대신인 장손무기(長孫無忌)ㆍ우지령(于志寧)ㆍ저수량(褚遂良) 등을 내치고 신진 세력을 발탁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녀는 반대파를 과감히 물리치고 통제하는 철권통치를 실시했지만, 백성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 특히 문벌과 혈통보다는 능력을 중시하는 관리등용 기풍을 세워 현종(玄宗) 때 `개원의 치`(開元之治)의 기반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녀의 치세는 太宗이 통치하던 `정관의 치`(貞觀之治)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아 `무주의 치'(武周之治)라 불리기도 한다.
*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무하유지향에서 인용 수정.(2022. 5. 12)
* 당대 ( 唐代 ) 장훤 ( 張萱 ) 의 < 무후행종도 ( 武后行從圖 )> 일명 < 당후행종도 ( 唐后行從圖 )> ( 設色絹本 , 180×100cm). 측천무후 ( 則天武后 ) 의 나들이 ( 出遊 )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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