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마루금의 자비
백선향(白鮮香) 달콤 풍긴 꺼벙한 양이터재
생불(生佛) 손바닥에 일촌(一寸) 갇힌 꺼병이
손오공 흉내 내다가 번개처럼 내빼네
* 낙남정맥(洛南正脈)제 9구간(배토재-양이터재-고은재)은 마루금에 명산 하나 없어, 실속 없는 꺼벙한 구간이긴 하나, 희귀식물이 많아 공개하기가 좀 꺼려진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가 없었던, '외솜다리'(에델바이스의 일종)가 발견되는가 하면, '큰꽃으아리' 군락지가 눈에 띈다. 그래서 그 식물을 시상(詩想)으로 택하지 않았다.
* 백선; 운향과(芸香科)의 다년생 풀. 늦봄에 담홍색의 오판화(五瓣花)가 피고 향기가 좋다. 그다지 흔치는 않지만 뿌리는 한약재로 쓰인다. 몇 년 전 어떤 스님이 백선 뿌리를 두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산삼(山蔘)의 일종인 봉삼(鳳蔘)이라며 1억원 이상를 호가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세상이 더들썩 했던 적이 있다.
* 양이터재; 6.25 한국전쟁 때 양 씨, 이 씨가 피난 와서 살았다는 마을 뒤 재.
* 일촌; 아주 짧은 시간, 약 15초 정도.
* 꺼병이; 꿩의 어린 새끼로, 순수 우리말.
* 손오공; 당 현장의 제자가 되기 전, 하늘에서 분탕을 치다가 석가여래의 법력(法力)에 꼼짝없이 붙잡혀, 곤욕을 치루고 난 뒤 순화되었다(서유기에서).
* 일화; 양이터재에서 인기척에 놀라 어미와 함께 여러 마리의 꿩새끼들이 도망가다, 한 놈이 낙오되어 나에게 붙잡혔다. 어찌나 귀여운지 손바닥 위 올려놓고 일행들에게 잠시 구경시켜주고는, 곧바로 놓아 주었더니 정말 쏜살같이 달아나 숨어버린다. 하찮은 파리 한 마리조차 쉽사리 해치지 않는 불살생(不殺生)의 자비야 말로, 진정 산꾼의 마음가짐이라 할 것이다(殺生有擇).
* 졸저 산시조 제 2집 <산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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