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수필 평론

금강산 탐승기(探勝記)

한상철 2011. 8. 13. 14:45

 

금강산 탐승기(探勝記)

                                              韓相哲(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서울특별시연맹 이사)

육로 관광에 대한 기대

2005년 1월 23부터 25일까지 2박3일 일정의 금강산관광은 이로써 두 번째 이나, 육로로는 처음이다.

1999년 1월 20일부터 23일 까지 3박4일 일정의 금강호를 이용한 배편 관광에 비해 하루가 줄어든 셈이다.

관광의 목적은 한국등산학교 동계반 교육생들을 격려함과 아울러, 금강산의 얼음맛도 한번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으나,

일정상 빙벽등반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탐방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23일, 북측 땅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 채, 역삼동에 있는 '한국 등산학교'사무실에서 이인정 교장을 비롯,

산악계 지도자 후원자 그리고 취재기자와 같이 총 76명이 승차한다.

14시 경 고성에 있는 금강산콘도 측으로부터 관광증을 받고(손전화는 임시로 맡김),

한 시간 뒤쯤 통일전망대 남측 출입경사무소에서 대기한다.

마침 1월 21부터 23일까지 금강산에서 '통일기원 山祭'를 마치고 입경하는 대한산악연맹 김상현 회장 및 그 일행,

유명산악인 박영석씨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15: 30분경 남측 출경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관광전용 버스로 갈아탄 우리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남측 초소 군인들의 전송을 받고,

남방한계선을 지나 군사분계선에 근처에 있는 북측 초소에 이른다.

인원 점검과 검색을 받기 위해 잠시 정거한다. 2인 1조로 구성된 북측 군인들의 표정은 딱딱하고 어색하다.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앞 뒤 두 대의 차량호송을 받으며,

시원스레 뚫린 관광도로를 따라, 북녁 산하를 첫날 밤 신부를 대하듯 조심스럽게 관찰해본다.

이 도로는 남측이 모든 자재와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북측은 인력을 제공했다. 지뢰 제거작업만도 3개월이 걸린 후 건설했다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야심 찬 '민족대화합'의 길이다.

군사분계선은 철조망이 처져있거나 특별한 시설물이 있는 게 아니고, 띄엄띄엄 녹슨 쇠말뚝이나 삭은 나무말뚝이 박혀 있어,

세월의 무상함과 분단의 아픔을 대변해준다.

설렘과는 달리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은 삭막한 가운데에도 독특한 자연미를 잃지 않아, 가벼운 흥분을 가라앉혀준다.

산은 주민의 땔감으로 헐벗어져 있고, 60년 동안 이념에 희생된 북녘 동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리 음산한 겨울 농촌이라지만 그렇게 사람이 없진 않을 턴데, 무심한 철새들만 황량한 벌판을 쪼고 있을 뿐...

16시:40분경 온정리 도착. 눈 덮인 겨울 금강산을 6년 만에 다시 대하니 감회는 새롭고,

외로운 갈매기가 선회하는 활처럼 휜 장전항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북측 출입경사무소는 예전에 있었던 그 자리이고, 관리들의 태도는 많이 개선 된 듯하다.

온정리는 변화중

나무로 만든 조잡한 위장용 탱크가 있었던 금강산 야산 자락은, 제2 온정각 신축용 부지와 대규모 골프장 건설용 땅으로 바뀌는 등,

관광시설 확충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현대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북한 주민을 직접 고용시켜 그들의 소득을 늘려주는 조치는,

가히 획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도 한편은 이쪽을 계속 경계하며 폐쇄를 강요하는 건지,

아니면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 혼란이 없도록 미리 훈련을 쌓으라고 하는 건지,

“우리 식대로 살아가자”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붉은 구호를 볼라치면,

그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어, 어쩐지 뒷맛이 씁쓸해진다.

조금씩이나마 변화하는 관리계층보다, 주민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쉽사리 될는지 의문이다.

설봉(雪峰)의 극치

이튿날 구룡폭포를 보러 간다. 흔히 금강산을 부를 때, 봄은 금강, 여름은 봉래, 가을은 풍악, 겨울은 개골로 부르나,

북측은 눈 덮인 겨울 산을 설봉산(雪峰山)으로 더 즐겨 부른다.

올해의 금강산에는 유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고 자랑한다.

들머리까지 가는 도중 포장도로 옆 군락을 이룬 토종 적송(금강송)의 아름다움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다.

러셀이 잘 된 눈길을 뽀드득 밟는 묘미, 화려한 복장과 장비를 갖춘 한국등산학교 학생들을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북측 관리인과 길 옆 판매원...그네들은 지금까지 우리 측 최첨단의 빙벽장비를 봤을 리 없는데다,

이러한 등산행위 조차도 한가한 부르주아지(bourgeoisie)의 쾌락(?) 쯤으로 여길 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이것 저것 묻고 만져보지를 않나? 또 “이런 것(빙벽등반)하면 월급을 얼마나 받으며, 돈이 되느냐?”는 등등.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역시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아는 가’ 보다... 외부의 문물이 자꾸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네들 ‘사고의 틀’도 바뀌겠지?

각설, 금강산의 하늘과 땅은 꽁꽁 얼어붙었다. 학생들은 일단 옥류동(선녀탕)에 멈춰 빙벽 기초교육을 받고,

격려 팀은 구룡연 까지 등행(登行)한다.

십 여분 오르다 보면 왼쪽에 어마어마한 봉황과 마주친다. 금강 신8경이자, 이번 동계반의 주(主)교육용 빙장으로 이용 될 ‘비봉폭포’다.

한 여름 직각으로 쏟아지다 하얗게 부서지는 폭포는 ‘긴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푸른 봉황’의 기상으로,

청빙으로 굳어진 겨울모습은 더 장관을 이룬다.

5분 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전래동화 ‘나무꾼과 선녀’의 배경인 절경 상팔담(上八潭)과의 갈림길에 이른다.

그 쪽은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아 출입이 금지된다. 아예 개방을 하지 않을 건가?

좀 더 가쁜 숨을 몰아쉬면 드디어 구룡폭포에 다다르게 된다. 관폭정(觀瀑亭)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폭포를 감상하다 안면이 있는 북측관리인 허복남(許福男)씨 이정수(李正秀)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흘러내리다 그대로 얼어붙은 74m 낙수와 13m의 담(九龍淵)은, 글자그대로 아홉 마리의 흰 용이 뒤엉켜 꿈틀대는 형국.

설악의 대승폭포, 송악(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명폭(名瀑)인 이 폭포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일품.

마치 거대한 빙하가 무너지며 덮칠 듯 쏟아지는 비류는 용추(龍湫)에서 실컷 구른 다음,

거품과 함께 물방울을 한껏 토해내 관람객의 옷을 흠뻑 적셔 놓는다.

이번만큼은 둘 중 하나를 꼭 가고 싶어 했던 세존봉과 비로봉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아쉬움이여!

정자 왼편 비탈을 따라 희미하게나마 나있는 옛 등산로를 보며, 침만 꿀꺽꿀꺽 삼킨 소박한 산꾼의 소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전을 핑계 삼아 출입을 통제시켰지만, 우리 측이 러셀을 해주지 않으면, 길조차도 낼 수 없는 그들...

미련을 남겨두고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옛 금강산의 4대사찰 이었으나, 6 25전쟁 때 미군의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신계사 터에 아직은 미단청 상태이긴 하지만, 대웅전이 복원된 것도 길조로 보인다.

남측 조계종이 주관하여 현재 스님 한 분이 기거하면서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데,

무슨 속셈인지 몰라도 북측이 전체복원을 서둘러 달라 한단다.

해금강(海金剛)과 삼일포(三日浦)

다음 날 관광은 만물상 또는 해금강 코스 선택형이다. 만물상은 지나 번 다녀온 곳인데다,

눈 때문에 주차장 까지 밖에 못가니 등산 의미가 없어 후자를 택한다.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날씨는 점차 어두워진다. 먼저 해금강을 본 후 삼일포로 이동할 예정.

오늘도 북측이 안내원을 대동, 앞뒤 호송차량으로 철저히 현지 주민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다.

해금강은 사진에서 본 것과 조금 다르다.

유명한 총석정이 바로 해금강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총석정은 관동8경의 하나로 이 보다 북쪽 통천에 있다.

학창시절에 잘 못 입력된 기억이 오랜 추억으로 자리 잡은 탓이려니? 미인 안내원을 따라 해변을 산책한다.

마침 거센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부서지곤 한다. 그의 제지로 바다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안전지대에서 맴돌다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부산 태종대 절리(節理)와 같은 웅장한 맛이 없는 대신, 아기자기한 절벽은 만물상의 축소판인양,

청순한 북녘 가인의 가슴에 ‘통일을 비는 망향석’으로 자리 잡으리!

“선생님 오늘 잘 왔시우! 내래 오늘 같이 파도가 센 날은 다시 보기 힘들다우!”라며 절경을 찬탄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추위에 달아올라 볼그레한 뺨, 엷은 미소로 호소하듯 쳐다보는 여운은 정녕 잊을 수 없네..

일정에 맞추기 위해 삼일포로 간다.

이 역시 관동8경의 하나로 ‘어떤 왕이 하루만 머물려다, 경치가 기막히게 좋아 3일간 머물렀다’는 전설을 간직한 명승지다.

오래 전에 바다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육지로 치솟아 둘레8km의 민물호수로 바뀌었다 한다.

호수 안은 조그만 섬과 바위 위 '봉래정' 등 정자가 있고,

주위의 산과 기암괴석이 소나무와 어우러진 선경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호수는 꽁꽁 얼어있고, 마침 함박눈이 조금씩 내려 운치를 더해준다.

한 가지 유감은 절경 바위에 온갖 적색구호를 비롯해 김일성 과 그의 처 김정숙의 선전 미화 문구가 잔뜩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관점이 아닌 자연을 아끼는 뜻에서 그저 염려해봤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

몇 년 전만해도 평균1m이상 얼던 얼음이 최근에는 30cm 정도로 얇아지는 현상을 두고,

‘통일의 열기’때문이라고 편리하게 해석하는 그네들에게 칭찬을 해줘도 좋을까?

토산품을 파는 호반정자 단풍정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귀로에 접어든다.

눈앞에 펼쳐진 곡창 고성평야에서 소출되는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를 마시며,

아리따운 북녘 처녀로부터 “선생님!‘착한 놈’ 맛 어떻습네까?”란 구수한 사투리를 멀지 않아 들어보기를 간절히 기다려 본다.

 

미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조국(祖國)의 명산 금강산을 좁은 식견으로, 모두 노래하기란 무리라고 판단되어,

졸작 시조 2수로써 그 아름다움의 일부나마 대신하고자 한다.

 

1;  북측에서는 도수가 낮은 술을 ‘착한 놈’, 도수가 높은 술을 ‘센 놈’이라 부른다.

주2; 금강산 신(新)8경; 금강산호텔 대연회장에 그려진 벽화. 1993년 1급 인민예술가 9명이 동원되어 30일간 그렸음.

 1)구룡폭포, 2)상팔담, 3)옥류동, 4)비봉폭포, 5)삼선암, 6)만물상, 7)삼일포, 8) 해금강.

 

1. 구룡(九龍)폭포

구슬로 구르다가 하얗게 부서지곤

잠겼다 솟구치다 비늘 엉킨 푸른 용

십만 리 근두운 타려 공중제비 돌려나

 

* 근두운 (筋斗雲); 손오공이 탄다는, 단숨에 108,000리를 난다는 구름.

 

2. 비봉(飛鳳)폭포

봄 되면 날아가는 수정체(水晶體) 안 청색(靑色) 미라

물뼈다귀 추려내는 독사이빨 은(銀)바일로

잠자는 봉황등 찍어 금강연줄 꿰놓다

 

* 물뼈다귀; '폭포에 붙은 얼음'을 북측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 바일; 빙벽등반시 얼음을 찍고 오르기 위한 쇠도구로 흔히 아이스 피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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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사) 한국산악회 회원, 한국산서회 부회장, 한국히말라얀크럽 감사,

             (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 저서로 山시조집 <산중문답> <산창> <산정만리>가 있다.

 

 

금강산 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