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수필 평론

<산중문답> 평론/우명길 (등산인 겸 고전연구가)-자료 저장

한상철 2016. 4. 16. 07:00

《산중문답》으로 우리 산에 다가가다

 

                                      우 명 길(고전연구가)

 

1.우리 산의 이해

산이란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어느 산의 산세란 그 산이 얼마나 높이 솟았느냐의 산 높이로 가름한다.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봉이 세계 최고의 산봉우리로 대접받는 것은 산 높이가 해발 8,848m, 지구상에 이 보다 높은 산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 선조들의 산에 대한 이해는 조금은 색달라 산을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山自分水)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우리 산을 산봉우리라는 점()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고, 산봉우리를 이어놓은 산줄기라는 선()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 선을 경계로 물이 나뉘므로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지 않았어도, 물만 가를 수 있는 높이라면 우리 선조들은 산이라 부른 것이다.

세간에 회자되는 백두대간은 북쪽의 백두산에서 남쪽의 지리산을 잇는 거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가 장장 1,600km를 넘는다. 가히 한반도의 척추라 이를 만한 백두대간이 중요한 것은 이 백두대간과 이에서 분기된 정맥들이 강을 둘러싸 유역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산은 강에 물을 대는 강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연유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줄기를 족보식으로 체계화한 산경표(山經表), 다른 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2.우리 산과 시조

요즘은 산행을 쉬고 있는 작가가 이제껏 쌓아온 산행경력은 보통사람들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유럽의 최고봉인 엘부르즈, 남미의 최고봉인 아콩카과와 아프리카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를 오른 것만으로도 우리 산악계에 이름을 들이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이에 만족치 않고 우리의 산줄기에 눈을 돌려 백두대간과 여러 정맥을 종주했다는 것은 우리 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역량 있는 산악인들은 주로 염원하는 바가 국내산의 암벽과 빙벽을 오르고 그를 바탕으로 해외의 고산을 등정하는 것이어서 좀처럼 백두대간이나 정맥 종주에 나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상철 작가의 백두대간 종주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 이다.

문학이란 흔히들 경험을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산을 형상화하는 데는 역량 있는 산악인의 산행경험과, 이 경험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을 만한 작가적 능력이 함께 요구된다 하겠다. 이는 산행경험은 많은데 작가적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경험의 형상화에 실패하기 쉽고, 문학적 능력은 빼어나지만 산행경험이 많지 않으면 관념화에 머물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면서 산행경험과 문학적 능력을 두루 갖추어 우리 산을 서정시로 훌륭하게 그려낸 분들을 들라면 시인 이성부와, 시조작가 한상철을 빼놓을 수 없다. 시인 이성부는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행경험을 현대시로 형상화했고, 시조작가 한상철은 1,000회 넘는 국내산의 등산경험을 시조로 엮어냈다. 이성부의 시집<<지리산>><<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한상철의 시조집山中問答이 그것들이다.

우리 산을 담아내는 문학의 그릇이 반드시 서정시라야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600여편의 유산기(遊山記)는 모두가 한문으로 된 산문이고, 오늘날의 산행기도 거의 산문이다. 선조들이 남긴 운문인 한시(漢詩)도 상당수가 전해지는바, 산문이냐 운문이냐를 가리는 일은 의미 없다 하겠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선조들이 남긴 산문형식의 유산기는 적지 않은데, 운문의 시조는 그렇지 못하다. 교과서에 실린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도 산을 소재로 해 처세를 이야기했을 뿐, 산을 오르내린 경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니다. 한춘섭이 엮어 펴낸 <<고시조해설>>에 실린 시조는 모두 245편이다. 이 책에 실린 대다수의 시조가 연군지정(戀君之情)을 노래한 것으로, 특정 산을 노래한 시조는 서너 수에 불과한 것을 보아도, 시조로 산을 그려내기가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시조로 쓴 산행기록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은, 시조라는 그릇이 산행경험을 담아내기에 너무 정형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문시에 가까운 사설시조를 논외로 한다면, 평시조의 형식미는 3612음보라는 틀의 압축에 있다고 하겠다. 어느 시()건 표현의 압축을 피해갈 수 없다지만, 시조는 유독 심하다. 45자 내외의 평시조로 산을 형상화 내는 일이 쉽지 않기에, 오늘에 이르러서도 산을 그린 시조가 많지 않은 것이다.

작가가 우리 산에 눈을 돌린 것에 특별히 고마워하는 것은 우리 산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시조가 동원되어서이다. 압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조로 우리 산을 노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래의 대상이 우리의 산인 이유다. 우리 산을 담아내는 문학의 그릇이 시조라면 좋겠다는 것은 신토불이(身土不二)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조의 역사가 우리 산이 우리 국토를 지켜온 역사만큼 유구하지는 못해도, 고려 말 유학자들이 쓰기 시작해 오늘까지 그 맥이 전해지고 있으니, 일제 때 들여온 현대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산을 그려낸 시조가 많지 않은 것은 조선 시대 대다수의 시조가 연군지정에 몰린 때문이지, 시조라는 그릇이 적합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한상철 작가의 山中問答이 우리 몸에 면면히 흐르는 신토불이 정신을 되살려 산 시조의 활성화에 기여하리라 믿는다.

 

3.시조로 엮어낸 산중문답

이 책을 손에 들면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책 제목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작가는 책 제목을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칠언시 소이부답(笑而不答)”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問余何事栖碧山 나에게 묻기를 그대는 무삼 일로 벽산에 사는고?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유수는 그대로 흘러서 가버리지마는

別有天地非人間 인간처 아닌 곳에 별천지가 있었네

 

작가는 스스로 산에 대해 묻고 스스로 답을 했으니 소이부답(笑而不答)이랄 수는 없지만, 전편에 흐르는 일관된 정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대화하는 소이부답의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실린 산은 모두 96산으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 낙남정맥 및 한중산맥(한강기맥)의 여러 산들이 포함되어 있다. 해당 산의 이름이 뒤편의 해설에 실려 있어 처음 읽을 때는 산 이름을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다. 산 이름을 몰라도 한 편의 시조로 완벽하게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문학적 역량덕분이다.

 

동안거 마쳤으니 득도 물 오르노라

우수 오늘이건만 대동강물 꽁꽁 여전

두어라 자비본성불 신록으로 오겠지

 

위 시조는 포천의 관음산(觀音山)을 노래한 대춘부(待春賦)”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잘 헤아린 이 시조가 포천의 관음산을 노래한 것으로 알게 된 것은 해설을 보고나서였다. 자비본성불이 관세음보살의 별칭임을 알고 나서야 관음산을 이리 노래할 수 있다 싶었다.

말하기 쉬워 이 책의 시조들에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관통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런 작품을 빼내는 데는 작가로서는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산문으로 산행후기를 쓰는 일도 고통스러운데 45자 내외로 압축해 표현한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시상을 잡기 위해 가본 산을 다시 오른다는 작가의 고백을 듣고서야, 시조를 쓰는 일이 장문의 산행기를 쓰는 것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작가가 굳이 시조를 고집한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대시로 산을 노래하는 데 불가피하게 따르는 것이 현대시의 산문화 경향이다. 산문을 배제한 진정한 서정시를 남기기 위해 택한 것이 시조이기에 작가는 조탁(彫琢)의 진통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래 시는 이성부의 <<지리산>>에 실린 벽소령 내음이다. 벽소령은 지리산의 주능선에 자리한 고개이다.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먹고

남쪽 아래 골짜기 내려다 본다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 온다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그 사람 내음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이 등성이를 넘나들며 빗점골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견디고 이울다가

내 이토록 숨막힌 사랑 땅에 떨어짐이여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나씩 떨어지지만

무엇을 그리워하여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다음 시조는 한상철 작가의 풍진의 질투이다. 그 큰 지리산을 이 시조 한 수로 엮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작가는 그 엄청난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웅장은 드러내고 미려는 감추면서

외강내유를 제 것인 양 즐기어도

흥진이 그를 새오해 거꾸로다 이러니

 

스무 번 넘게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장문의 산행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 산의 외유내강이어서 풍진의 질투시조 한 수가 무릎을 치게 했다. 이성부의 벽소령 내음을 산문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작가의 풍진의 질투와 비교해보면,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에서 볼 수 있듯이 압축미는 작가의 시조에 미치지 못해 보인다.

작가가 시조를 쓰는데 상당한 문헌검증이 따랐음을 일러주는 작품도 꽤 여럿 된다. “다시 도진 산병” “고려산별곡”, “서북산 회고”, “추월야화”, “장송은 베어지고등이 그런 시이다. 강원도 영월의 봉래산을 노래한 장송은 베어지고를 읽노라면 시공을 뛰어 넘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이 책이 커닝은 곤란으로 끝을 맺은 데는 작가의 숨은 의도가 있을 법하다.

 

깃대만 바라보고 커닝을 하려해도

틀린 답 쓰게되면 불여귀만 못할진대

아서라 인생수업에 지름길은 없나니

 

커닝이란 정상적인 산길로 가지 않고 질러가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자칫 잘못하면 알바하기 십상이다. 알바란 길을 잘 못 들어 헤매는 것으로 커닝과 마찬가지로 산 꾼들이 즐겨 쓰는 은어이다. 우리는 앞에서 작가가 안내하는 95개의 산을 오르내리며 작가가 들려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마지막 96번째로 작가가 안내한 산은 경남 창원의 깃대봉으로 거의 무명에 가까운 평범한 산이다. 굳이 이런 평범한 산으로 안내한 것은 작가가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아주 평범한 진리 즉, “사는데 지름길이 따로 없음을 일러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4.우리 산의 환생

작가 한상철은 우리 산을 우리 시조로 노래해 행복했을 것이다. 그것도 무려 96곡이나 열창을 넘어 절창을 했으니 그의 백팔번뇌를 잠재웠을 만도 하다. 김춘수의 시 에서처럼 작가의 산 노래를 들은 우리 산이 비로소 작가에게 참모습의 산으로 다가갔을 테니 말이다. 작가의 절창은 山中問答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못다 부른 산 노래가 많이 남아 있어서도 그렇고, 앞서 부른 96곡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작가의 노래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어서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고, 감정을 지나치게 절제하려다가, 더러는 북받쳐 오르는 열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 산도 작가 한상철을 만나 행복할 것이다. 작가가 노래하지 않았다면 이름 없이 묻혀 있을 많은 산들이 이 작가를 만나 환생의 기쁨을 맛보았을 테니 말이다. 경남 김해의 용제봉, 강원 인제의 맹현봉, 강원 횡성의 풍취산, 충북 충주의 탁사등봉 등은 비로소 산이 될 수 있게 해준 작가 한상철에 진정 고마워할 것이다.

우리 산의 환생을 기뻐하는 사람은 작가만이 아니다. 수많은 산 꾼들이 다 그 기쁨을 나눠 누리고 있다. 인생수업에 지름길은 없다지만, 우리 산을 환생시키는 데는 우리 시조라면 그 지름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6. 1.25). .

 

* 필자 약력; 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잠시 고등학교 교편 잡음.

2. 백두대간, 9정맥 종주

3. 손에 잡히는 생태계(2015. 8. 27 정민북스 발행) 이상훈 지음. 추천사로 지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다.

4. 현재 국립강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박사과정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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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中問答개요; 국내 산악시조 제1韓相哲 지음. 서정(抒情) 단시조 108수 수록(대상 산 96개 외). 112, 224절기, 372()후로 편집. 백팔번뇌 상징. 184. 서문 김제현(전 경기대학교 국문과교수). 2001. 6. 10 발행. 도서출판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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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문학 제6호 2016년 봄호 제 185~192 쪽

* 시산 제83호 2016년 상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