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野史口號碑(야사구호비)/유악(원)-명시 감상 1,767

한상철 2022. 4. 30. 18:36

野史口號碑(야사구호비)-(四十四首其三十五) 

 

         劉鶚(유악/元)

七十已衰仍苦病(칠십이쇠잉고병) 벌써 일흔이라 쇠잔하여 병고에 시달리고

自憐無力任驅馳(자련무력임구치) 힘이 없어 분주하니 스스로 가엾게 여기네

明當告老乞骸骨(명당고로걸해골) 내일이면 늙은 몸이기에 사직을 주청하려니

孝子忠臣兩得之(효자충신량득지) 효자와 충신 둘 다 얻게 되었노라

 

☞ 劉鶚(유악/), <野史口號碑(야사구호비)> (四十四首其三十五) 

- : 거듭, 자주. 오히려, 여전히, 이에. 

- 苦病: 병으로 늘 고통 받음. 병에 잘 걸림. 

- 驅馳: 말이나 수레를 몰아 빨리 달림. (국가나 남의 일을 위하여) 분주히 돌아다니다. 뛰어다니다. 고생스럽게 애쓰다(辛苦). 

- 明當: 내일(明日). 

- 告老: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함. 늙어서 벼슬을 그만 둠. 

- 乞骸骨: 원사해골(願賜骸骨). `해골(骸骨)을 빈다`는 뜻. 재상이 연로하여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될 때에 사직(辭職)을 주청(奏請)함을 이르는 말이다. 신하는 모든 것을 임금과 백성을 위해 바치기 때문에 물러날 때 남은 것이라곤 해골밖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에게 쫓겨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項羽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劉邦은 초()나라 도읍인 팽성(彭城)을 공략했다가, 項羽의 반격을 받고 형양(滎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지자 項羽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項羽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이자 책사인 범증(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불발되고 말았다. 이런 내막을 전해들은 劉邦의 참모 진평(陳平)은 첩자를 풀어 나라 진중에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화가 난 項羽는 은밀히 劉邦에게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陳平은 원래 項羽 밑에 있다가 劉邦에게 의탁한 사람이라, 누구보다 項羽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項羽의 약점을 이용해 이간책을 썼는데, 멋지게 적중한 것이다. 陳平은 여러 중신(重臣)들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한 뒤 이렇게 물었다. "亞父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사신은 퉁명스럽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오" 하고 대답했다. ", 초왕의 사신이라고?  亞父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陳平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項羽 范曾 劉邦과 내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을 박탈해 버렸다. 范曾은 크게 노해 일갈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오." 項羽는 어리석게도 陳平의 책략에 말려들어, 유력한 근신이자 책사를 잃고 말았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전한다. 

- 孝子忠臣兩得之: 辭職하고 물러나면 사적으로는 부모를 봉양할 수 있으니 효자가 될 수 있고, 공적으로는 조정에 부담을 덜 수 있어 충신이 될 것이므로, 둘 다 얻는다는 뜻이다.

* 다음블로그 청경우독 해수 경해에서 인용 수정.(2022. 4. 30)

 

* 남송(南宋) 정치인 <문천상충효비(文天祥忠孝碑)> 탁본(拓本) (紙本, 100×6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