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수필 평론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 시조 시인 한상철씨-보도기사 저장

한상철 2018. 3. 8. 08:13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 시조 시인 한상철씨

 

뱀사골의 유혹

 

본색을 감추려다 비늘 떨군 율모기

능소화 꽃술 같은 붉은혀를 날름대며

은밀히 선녀를 꾀는 푸른눈의 악마여

 

‘산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을 자처하는 산악인 한상철씨(57)는 산을 소재로 4년 동안 3권의 시집을 낸 시조 시인이다. 그가 산과 인연을 맺은 사연이나 산에 대한 애정은 평범한 산꾼의 경지를 초월할 정도로 각별하다.

“은행에서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98년 12월 IMF환란 때 직장을 잃었다. 특별 퇴직금조로 12개월 월급을 더 얹어받았다. 큰 것을 잃었지만 대신 자유를 얻었다. 평소 못 가본 해외의 산을 가기 위해 18개월 동안 24곳을 몰아서 간 탓에 퇴직금을 날렸다. 이 덕분에 온갖 사람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고, ‘나는 누구이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풀렸다.”

퇴직 이후 그의 등반경력을 보면 국내 공식등산 1000회 이상, 해외 등산 34곳을 비롯해 백두대간, 호남정맥, 한북정맥 등을 종주했다. 이런 산들은 그에게 단순히 오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로 표출되는 시적 공간이다. 43자 안팎의 시조라는 정형의 율격 속에서 태어나는 산은 단순히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과 존재론적 사유에 대한 탐구 대상이다.

그는 정상정복이라는 등정주의를 지양하고 트레킹 위주의 산행을 즐긴다. 이것이 영국식 자연주의 등반이다. 물론 해외산행에서 정상을 오르기 위해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런 산 체험을 통해 시조로 쌓아올린 산은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호쾌하다. 절차탁마의 내공을 거쳐 첫 시조집인 ‘산중문답’(삶과 꿈)이 2001년에 발간됐고, 이어 2002년에 ‘산창’, 그리고 올해 해외산들만 묶은 ‘산정만리’가 나왔다. 그가 직접 오르고 밟아 온 체험의 산은 심미의 안개를 걷고 경건한 삶의 자세를 느끼게 해주는 위대한 스승이다. 그 스승을 만나기 위해 그는 마음 내키면 훌쩍 떠난다. 어느 물 깊은 골에서 자신의 시조로 창을 읊조리는 모습은 그의 지인들에게 낯익은 풍경이다.

이점석기자 rock@ 

 

* 2004. 7.15(목) <스포츠 서울>  제14면 납량 특집 '쉬리' 보도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