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문 감상

牧牛詞(목우사)/고계(명)-명문 감상 45

한상철 2020. 6. 1. 08:45

牧牛詞(목우사)

-목동의 노래

 

                        고계(高啓)/명

爾牛角彎環(이우각만환) 너의 소는 뿔이 꾸부정하고

我牛尾禿速(아우미독속) 나의 소는 꼬리 털 빠지고 짧네

共拈短笛與長鞭(공념단적여장편) 둘이 함께 짧은 피리와 긴 채찍 들고

南隴東岡去相逐(남롱동강거상축) 남쪽 고개 동쪽 언덕 쫓아다니네

日斜草遠牛行遲(일사초원우행지) 저물녘 갈 길은 멀고 소는 더딘데

牛勞牛飢唯我知(우로우기유아지) 소가 지쳤는지 배고픈지 나만 안다네

牛上唱歌牛下坐(우상창가우하좌) 소 타고 노래하다 소 아래 쉬고

夜歸還向牛邊臥(야귀환향우변와) 밤에 돌아와서는 소 곁에 자네

長年牧牛百不憂(장년목우백불우) 긴 세월 소 길러도 근심 없지만

但恐輸租賣我牛(단공수조매아우) 단지 세금 땜에 내 소 팔까봐 걱정이라네   (번역 한상철) 

 

* 고계(高啓, 1336~1374)는 명나라 초기에 살았던 시인이다. 자는 계적(季迪), 호는 청구자(靑邱子). 강남의 문화 중심지 쑤저우(蘇州)의 시민으로 지냈고, 장사성(張士誠)의 정권하에서 시재(詩才)로 이름을 날렸다. 장사성이 난징의 주원장(朱元璋, 明太祖)에 패하여 쑤저우가 함락(1367)된 다음, 난징에 초빙되어 <원사(元史)>의 편찬에 종사하였다. 이어 급속도로 인정을 받아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승진하나, 갑자기 사직하고 귀향한다. 후에 태조의 위압정책에 희생되어 형사(刑死)한다. 나이는 39세였다. 그는 '명초 사걸(明初四傑)'의 첫째로 손꼽히며, 명대를 통틀어 최대의 시인으로 지목된다. 그의 시는 원대에 강남에서 출생한 시민문학의 정점이라 일컬어졌고, 이미 양유정 등에서 시작된 의고풍조(擬古風調)를 계승했다. 그 후의 고문사파(古文辭派)처럼 그 모범을 성당에 한정하지 않고, 한위육조당송(漢魏六朝唐宋)을 모두 취하였다. 더우기 의고풍 속에 청신한 정취를 담고, 풍부한 감성이 넘친다.(위키백과)

* 감상; 목동 둘이 소를 키우고 있다. 뿔이 꾸부정한 소는 친구네 소고, 꼬리 털이 빠져 짜리몽땅한 소는 우리 집 소다. 그러므로 어느 소가 어느 집 소인지 헷갈리게 되면, 뿔과 꼬리를 살펴보면 된다. 그들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불기도 하고, 풀을 뜯고 있는 소 옆에 누워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일어나는 뭉게구름 보며 쉬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소 근처에 누워서 소와 함께 잠을 잔다. 늘 소와 함께 하는 연유로, 지금 소가 피곤한지 배가 고픈지, 소가 처한 상황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순하디 순한 눈망울을 가진 소와 함께 하는 생활은 정말 행복하지만, 대단히 조마조마 하기도 하다. 아버지가 세금에 시달리다 못해, 소를 냅다 팔아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다음카페 한시 속으로에서 인용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