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시 감상

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왕창령(당)-명시 감상 2,376

한상철 2024. 8. 13. 07:01

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또는 答五陵太守(답오릉태수)

-무릉의 전 태수에게 답함

       王昌齡(왕창령)/당

仗劒行千里(장검행천리) 보검 하나를 차고서 천리를 내달리는

微軀敢一言(미구감일언) 미천한 몸이 감히 한 마디 하겠소이다

曾爲大梁客(증위대량객) 일찍이 대량(大梁)의 후영(侯赢)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으니

不負信陵恩(부부신릉은) 신릉군 같은 그대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소이다

* 武陵田太守(무릉전태수): 무릉(武陵)은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상덕현(常德縣) 안에 있는 지역으며 성이 전(田)인 무릉태수를 말한다.

* 仗劒(장검): 검을 차다.

* 微軀(미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당시 왕창령이 폄적을 당한 몸이라 이렇게 말한 것이다.

* 大梁客(대량객): 侯嬴(후영)은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은사(隱士)로 집안이 가난해, 나이 일흔에 대량(大梁)의 이문(夷門)의 문지기가 되었다.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이 그의 훌륭함을 듣고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신릉군에게 계책을 올려 조나라를 구하였다.

* 不負(부부): 저버리지 않다.

* 信陵(신릉): 信陵君(신릉군). 위나라 공자 위무기(魏無忌).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저명한 군사가로, 기원전 276년 신릉(信陵)에 봉해지면서, 신릉군(信陵君)으로 불리었다.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과 함께 전국시대의 4공자로 불린다. 4공자 중 가장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로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조나라 평원군이 매형이었으며, 조나라를 도와 초(楚), 조(趙), 한(韓)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 군대를 크게 격퇴했다. 위공자병법이 전해지고 있고, 진나라의 이간으로 위나라 왕의 미움을 사 술로 지내다 술독으로 죽었다. <史記列傳(사기열전) 권77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출처] [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 1-32.答五陵太守(답오릉태수)/答武陵田太守(답무릉전태수) - 王昌齡(왕창령)|작성자 swings81. 네이버블로그 인용 수정.(2023. 10. 26)